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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프랑스 연금 개편 갈등…“납부 기간 늘려야” vs “지금도 건실”

등록 2023-03-08 18:00수정 2023-03-08 18:16

전문가들도 이념에 따라 엇갈린 주장
찬성론자, 재원 부담·경제 성장 내세워
반대론자, 불공평한 구조 심화 비판
7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연금 제도 개편 반대 시위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가면을 쓴 이들이 “세기의 강도”라고 쓴 펼침막을 든 채 행진하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7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연금 제도 개편 반대 시위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가면을 쓴 이들이 “세기의 강도”라고 쓴 펼침막을 든 채 행진하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프랑스 연금 제도 개편이 다수의 국민 대 정부의 정면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의 연금은 정부 주장대로 위기에 처했을까? 한국의 국민연금 고갈 논란과 비슷하게, 프랑스에서도 전문가들조차 이념 성향에 따라 엇갈린 주장을 펴고 있다.

프랑스 연금 체계는 민간기업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일반 연금, 자영업자 대상 연금, 공무원 등을 위한 특별 연금 등 3가지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부의 국고 보조금 없이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와 ‘일반 사회보장세’ 등의 세금을 주요 재원으로 운영된다. 보험료에 주로 의존한다는 점은 국민연금과 비슷하지만, 한국이 지난해말 현재 890조원의 국민연금기금을 보유한 것과 달리 프랑스는 많은 자금을 쌓아두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은퇴자에게 지급할 연금이 늘면 이는 즉각 노동자들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가 은퇴 가능(조기 은퇴) 연령을 현재의 62살에서 64살로 연장하고, 보험료 납부 기간을 42년에서 43년으로 늘리는 개편안을 내놓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 출발한다. 마크롱 정부는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13.8% 수준인 연금 지급액이 2032년 14.7%까지 높아질 것이라는 전문가 위원회의 보고서를 근거로 연금 위기를 피하려면 국민들이 더 오래 일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일부 전문가들도 여기에 동조한다. ‘에에스세페’(ESCP) 경영대학원의 장마르크 다니엘 명예 교수는 최근 독일 <도이체벨레> 방송 인터뷰에서 “1950년에는 연금 생활자 한명의 연금을 노동자 4명이 나눠 부담했지만, 2040년에는 1.3명이 부담하게 될 것”이라며 제도 개편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연금이 적자는 아니지만, 공공 부문 연금은 정부가 보조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싱크탱크 ‘세르클 드레파뉴’의 경제학자 필리프 크레벨도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더 많은 이들이 경제 활동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개혁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의 의도를 의심하는 학자들도 있다. 파리 팡테옹 소르본 대학교 소속 경제학자인 미카엘 제무르는 “과거의 개편 조처로 이미 실제 은퇴 연령이 늦춰졌고, 현재의 연금 체계는 꽤 건실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기업들의 관련 세금 환급이 끼칠 여파를 줄이고, 정부 재정 균형을 이루는 것만 바랄 뿐”이라며 정부가 프랑스의 사회 모델을 조금씩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가 제도 개편의 근거로 제시하는 전문가 보고서도 연금 적자를 예상하지 않고 있다”며 “노사의 부담을 늘리는 것으로 재원 문제는 대처할 수 있고, 많은 사람은 은퇴 연령을 늦추는 것보다 이를 선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싱크탱크 ‘프랑스 경제상황 관측소’(OFCE)의 경제학자 앙리 스테르디니아크는 은퇴 연령 연기는 어린 나이에 노동 시장에 뛰어든 저학력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학 학위가 있는 이들은 현재의 보험료 납부 기간 42년을 채우기 위해 어차피 62살 이후까지 일해야 한다”며 개편안은 20살 이전부터 일해 62살 이전에 보험료 납부 기간을 채운 노동자들의 노동 기간만 늘리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불평등 연구 전문가인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학교(PSE) 교수도 정부의 연금 개편안은 불평등을 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프랑스 일간 <르몽드>의 블로그에 쓴 글에서 “보험료 납부 기간을 43년으로 늘린다면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며 “이런 원칙을 채택하면 은퇴 가능 연령을 설정할 필요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연금 위기는 보편성, 누진성(부자가 더 많이 부담), 정의라는 원칙에 입각해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프랑스의 연금 혜택은 유럽 주요 국가들에 비해 좋은 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0년 자료를 보면 22살에 노동을 시작한 프랑스인의 통상 은퇴 연령은 63.5살(조기 은퇴 연령 62살)로, 노르웨이(67살), 네덜란드(66.3살), 영국(66살), 독일(65.7살, 조기 63.7살), 덴마크(65.5살), 스페인·벨기에·핀란드(65살, 조기 63살), 스웨덴(65살), 오스트리아(65살, 여성은 60살, 조기 62살)보다 이르다. 주요국 가운데 프랑스보다 은퇴 연령이 이른 나라는 이탈리아(62살) 정도다. 같은 기준으로 할 때, 한국은 각각 62살, 57살이다. 연금의 실질(세후) 소득대체율(은퇴 전 소득 대비 비율)도 2020년 74.4%로 유럽연합(EU) 27개국 평균(67.6%)보다 높았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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