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현지시각)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런던 다우닝가에서 불법이민법 추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런던/AFP 연합뉴스
“실수하지 마라. 불법으로 들어오면 머물 수 없을 것이다.”
영국 정부가 불법 이민자를 ‘추방’하는 강경한 대책을 예고하고 나섰다. 보트를 타고 해협을 건너오는 불법 이민자를 가능한 한 빨리 영국 땅에서 내보내야 하는 의무를 내무부에 부과하기로 했다. 유엔과 인권단체 등은 비판하고 있다.
7일(현지시각) 영국 정부가 이러한 내용을 담은 일명 ‘불법이민법’ 추진을 발표했다고 <가디언> 등이 전했다.
이 법은 불법으로 들어온 이민자들을 “합리적으로 실행 가능한 빨리” 본국이나 제3국으로 돌려보내도록 한다. 내무장관에겐 이들을 추방할 ‘의무’가 주어진다. 합법적 경로로 들어오지 않은 이들은 영국에 머무는 동안 망명 신청이 금지되고, 보석 없는 구금에 처한다. 불법으로 들어왔다가 한번 추방당하면 영원히 영국으로의 입국은 불가능한 강경책이다.
수낵 총리는 “총리가 될 때부터 불법 이민자 문제를 다섯 가지 우선 과제 중 하나로 삼았다”며 “불법 이민은 영국의 납세자들과 합법적으로 이주해오는 이들에게 불공정하다”고 말했다. 정책이 실행될 경우 주무부처가 될 내무부 수엘라 브래버먼 장관도 “영국인들은 이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고 있다. 우리는 보트를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남부와 프랑스 북부 사이의 영불해협은 영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의 주요 통로다. 주로 작은 고무보트를 타고 넘어오는 이들은 해협을 건너는 과정에서 보트가 뒤집혀 목숨을 잃기도 한다. 지난해 영불해협을 통해 들어온 이민자는 4만5755명에 달했다. 2023년에도 벌써 3천명 가까운 이들이 들어왔고, 올해 말까지 8만명이 넘을 것이라는 추산도 있다.
<뉴욕 타임스>는 “현재로써는 전쟁이나 박해를 피해 탈출한 망명 신청자들이 다른 국가에서 난민 지위를 얻고 영국 비자를 받을 수 있는 합법적인 길이 없다”며 “이 때문에 이들은 비합법적이고 때로는 위험한 항해를 유일한 선택지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정부는 불법 이민 문제에 꾸준히 강경책을 내왔다. 지난해 4월 보리스 존슨 총리 집권 때는 아프리카 르완다에 돈을 주고 영국의 불법 이민자를 르완다로 실어나르겠다는 계획을 발표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정책은 유럽인권재판소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지금까지 실제로 르완다로 이송된 영국 내 불법 이민자는 없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이번 불법이민법을 발표하면서도 추방하는 제3국으로 르완다를 언급하는 등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이번 대책 역시 이미 강한 비판을 마주했다. 유엔난민기구는 성명을 통해 “깊이 우려된다”며 “명백하게 난민협약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민자들에게 안전하고 가능한 합법적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이번 법안은 난민들의 권리를 빼앗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조만간 불법이민법의 위법 소지 해결 방안 등 세부 내용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다만 브래버먼 내무장관 역시 하원의원들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이번 법안이 유럽인권조약에 어긋날 가능성이 50% 이상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고 <가디언> 등은 전했다. 여당 내부에선 영국 정부가 유럽인권조약을 아예 탈퇴해야 한다는 강경한 주장까지 나온다. 일각에선 수낵 총리가 해묵은 난민 문제에 강경한 태도를 보여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조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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