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미나 베굼이 2015년 2월 17일 영국 런던 남부 가트위크 공항 검색대를 지나가고 있다. 사진 영국 경찰 제공. AFP 연합뉴스
10대 때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합류했다가 영국 국적을 박탈당하자 취소 소송을 낸 20대가 항소심에서도 패했다.
영국 특별이민항소위원회는 22일(현지시각) 샤미나 베굼(23)이 인신매매로 성적 착취를 당했다고 여길 “신뢰할 만한 의심”이 있지만 국적 취소 결정권은 내무부 장관에 있다며 항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비비시>(BBC) 방송이 보도했다.
베굼은 2015년 15살 때 학교 친구 두 명과 함께 런던 집을 떠나 시리아에 간 뒤 네덜란드 출신 이슬람국가 전투원과 결혼했다. 그는 2019년 이슬람국가가 와해된 뒤 시리아의 난민수용소에서 임신 9개월 상태로 발견됐고, 지금도 그곳에 머물고 있다. 그와 함께 간 친구 한 명은 2016년 폭격으로 숨졌고, 다른 한 명은 실종되어 생사가 불분명하다. 그도 남편과 아이 셋을 모두 잃고 혼자 남았다.
영국 내무부는 2019년 그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정보기관의 권고를 받아들인다며 그의 국적을 박탈해 귀국을 막았다.
지난해 11월 열린 공판에서 베굼의 변호인들은 베굼이 10대 어린 여학생이던 시절 친구 두 명과 함께 성착취를 노린 온라인 길들이기(그루밍)을 당해 시리아까지 가서 이슬람국가 전투원과 결혼한 것이라며 그가 성착취 인신매매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변호인들은 영국 내무부가 이런 사실에 눈을 감고 국적박탈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위법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위원회는 “베굼을 시리아로 부른 동기가 성적 착취이고 당시 베굼은 어린 소녀여서 이에 대해 타당한 동의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며 변호인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또 “어린 베굼이 나라를 떠나 국경을 넘어 시리아로 가는 것을 두고만 본 것에 대해서는 여러 국가 기구의 임무 태만과 배임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위원회는 이런 사실이 베굼의 국적을 박탈한다는 내무부 장관의 결정보다 앞서는 건 아니라고 밝혔다. 위원회는 베굼의 시리아행이 얼마나 자발적인 것이었는지, 베굼이 얼마나 영국 안보에 위협이 되는지 의견이 다를수 있지만, “우리 헌법 체계에서 이런 민감한 문제를 평가하는 것은 국가 장관의 몫이지 우리 위원회의 일이 아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020년 2월에도 위원회는 ‘국적을 박탈하면 무국적자가 된다’는 변호인들의 주장을 배척하고, ‘베굼이 방글라데시 국적 취득 자격이 있기 때문에 무국적자가 되지 않는다’는 영국 내무부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자국민이 이슬람국가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국적을 박탈한 사례는 매우 이례적이다. 미국과 캐나다, 독일,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 등 대부분의 나라가 이슬람국가에 참여했던 자국 국적자의 귀국을 허용하고 있다. 이런 문제에 천착해온 변호사 조나선 홀 케이시는 “점점 많은 나라들이 (이슬람국가에 참여했던 자국민에 대해) 전략적 거리두기에서 그들을 귀환시키는 정책으로 바뀌고 있다”며 “영국이 이런 문제에서 열외자가 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결정에 대해선 인종적 편견을 드러낸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영국의 인권단체 ‘리프리브’의 마야 포야는 “이번 결정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인종차별적 국적박탈 정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영국은 국민의 국적을 박탈한 유일한 주요 20개국(G20) 국가이며 시리아 북동부에서 자국민의 귀환을 거부한 마지막 국가”라고 말했다. 사이에다 와르시는 정부의 국적박탈 권한이 “거의 무슬림에 대해서만, 주로 남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 출신에 대해서만 쓰였다”며 이는 “법 앞의 평등과 공정이라는 영국의 가치와 맞지 않는 이중 구조의 국적 체계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보수당 의원도 비판에 동참했다. 데이비드 데이비스 의원은 “부끄러운 책임의 방기”라며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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