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휘할 새 총사령관으로 임명한 세르게이 수로비킨. AP 연합뉴스
블라디미프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특별군사작전’을 담당할 전선 사령관으로 ‘악명 높은’ 세르게이 수로비킨(56) 항공우주군 총사령관을 임명한 뒤 러시아군의 공격 양상이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군사 시설을 표적 타격하는 과정에서 이따금 오폭을 저지르는 듯 보였던 이전과 달리 대놓고 민간 시설을 겨누는 공격이 이뤄지고 있다.
8일 오전 이뤄진 크림대교 폭파에 대한 러시아의 ‘보복 공격’은 11일(현지시각)에도 이어졌다. 러시아는 9일 밤 우크라니아 남부 자포리자주를 상대로 보복을 시작해, 10일엔 우크라이나 전역에 80발이 넘는 미사일 공격을 퍼부어 19명이 숨지게 했다. <에이피>(AP) 통신은 이날 사흘째 공격으로 자포리자의 학교.주택.의료 시설에 미사일 12발이 떨어져 최소 1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중부 파울로그라드와 폴란드와 국경을 접한 서부 르비우의 에너지 시설도 공격을 받았다. 러시아군은 이전과 달리 군사 시설이 아닌 에너지 관련 등 사회기반시설을 주로 타격하고 있다.
11일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불타고 있는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자포리자 공공시설에서 소방관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는 모습을 우크라이나 국가비상서비스가 공개했다. EPA 연합뉴스
이런 극적인 변화는 8일 수로비킨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책임질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뒤부터 시작됐다. 그는 ‘러시아의 영웅’ 훈장을 받은 유능한 군인이지만, ‘아마겟돈(성경에 묘사된 인류 최후의 전쟁) 장군’이라는 별명이 붙은 만큼 무자비한 성격으로 악명 높다. 이런 평가가 붙기 시작된 것은 청년 장교 시절인 1990년대 초부터였다. 25살 대위 신분으로 1991년 8월 소련 보수파 쿠데타 때 부대를 이끌고 모스크바 시내에 돌입했다. 바리케이드를 쌓아 저항하던 시위대를 잔혹하게 진압해 시민 2명이 총에 맞아 숨졌고, 1명은 장갑차에 깔려 죽었다. 그는 쿠데타 이후 체포돼 6개월 수감됐지만, 보리스 옐친 정부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며 석방했다.
이후 군에서 승진을 거듭한 수로비킨 사령관은 2017년 3월~12월, 2019년 1월~4월 각각 시리아 원정군 공군 사령관과 시리아 원정군 사령관으로 파견됐다. 2015년 9월 시리아 내전 개입한 러시아는 제2의 도시 알레포 등에서 반군 소탕을 명분으로 병원 등 민간 시설에 폭격을 가했다.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는 수많은 민간인 피해를 불러온 이 공격에 책임이 있는 이로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수로비킨 사령관을 꼽는다. 그는 2017년 10월부터는 항공우주군 총사령관을 맡아왔다.
수로비킨 사령관과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전직 러시아 국방부 당국자는 영국 <가디언>에 “나는 오늘(10일) 아침 키이우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놀라지 않는다. 수로비킨은 사람 목숨을 고려하지 않는다. 완전히 무자비한 인물”이라며 “그의 손이 완전히 우크라이나인의 피로 물들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러시아 내 강경 우파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이번 인사를 단행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러시아 국방부는 그동안 누가 이번 전쟁의 총사령관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수로비킨의 인사는 예외적으로 공개했다.
러시아의 국방 분야 연구소인 ‘전력 및 기술 분석 센터’의 루슬란 푸코프(Ruslan Pukhov) 소장은 수로비킨 사령관을 독소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역사적 명장인 게오르기 주코프(18961974) 장군에 빗댔다. 그는 <파이낸셜 타임스>에 “수로비킨은 거친 사람이고 전쟁을 할 줄 안다. 진짜 야수다. 윗선에 진실을 말할 줄 아는 진짜 전사”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해군분석센터(CNA)의 러시아 분석가인 마이클 코프만은 “러시아군의 문제는 사령관 한 명을 임명해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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