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시민들이 21일 빅토리아 지하철역 주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런던/AP 연합뉴스
영국 철도노조가 21일(현지시각) 30여년 만에 최대 규모의 파업에 들어갔다. 전국의 열차가 멈춰서면서 출근과 통행, 운송 등이 차질을 빚었다.
영국의 철도시설공단인 네트워크 레일과 13개 철도회사 소속 철도해운노조(RMT) 노조원 약 4만명은 이날 임금인상과 구조조정 철회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참여했다고 <에이피>(AP) 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이들의 파업은 23일과 25일 두 차례 더 이어질 예정이다.
이날 파업으로 영국의 철도운행은 마비됐다. 역 대부분이 폐쇄됐고, 열차편은 약 80%가 운행이 중단됐다. 나머지 열차편 20%도 제한된 시간에만 운행했고 그나마도 원활치 않았다. 업무복귀가 일부 이뤄지는 22일에도 정상 운행은 60%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파업은 코로나19 이후 열차 승객은 아직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으나 정부의 코로나 지원금 지급이 끝나면서 철도회사들이 비용과 인원 감축 등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벌어졌다. 철도회사는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에 대해 지난해 철도 이용 승객이 코로나19 이전의 17억명에서 10억명으로 줄었다며 3% 이상 인상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반면 노조는 최근 물가상승률이 9%에 이른 상황에서 임금을 7% 이상 올려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구조조정을 둘러싸고도 사용자 쪽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노조는 직업 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이날 각료회의에서 이번 파업에 대해 “잘못된 것이고 불필요하다”며 즉각적인 노사간 타협을 요구했다. 정부는 임금인상이 물가상승이 서로 자극해 오르는 악순환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노사 협상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며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법을 개정해서 파업 중에도 철도회사들이 최소한 운영을 하고 필요하면 계약직 직원을 고용할 수 있게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총리의 신자유주의 경제 개혁 이후 영국에선 대규모 파업이 드문 일이 됐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 봉쇄가 풀리고 러시아 전쟁의 여파로 에너지와 식량 등을 중심으로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이에 따른 임금 상승 요구도 각계에서 거세지고 있다. 다음 주에는 국선변호사들이 파업을 예고하고 있으며, 교사 노조와 우체국 노조는 파업 등 집단행동 방향을 둘러싸고 내부 논의를 벌이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영국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전날 벨기에 브뤼셀 공항에선 보안요원 파업으로 출발편이 모두 취소됐다.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 직원들은 다음달 1일부터 파업에 들어가며, 저가항공사 이지젯의 스페인 승무원들은 최소 40%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다음달 파업을 예고했다.
대규모 파업은 종종 정권의 향배를 결정하는 정치적 사건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각국 정부는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실제 영국에선 1978∼79년 대규모 파업으로 사회 서비스가 마비되는 혼란을 빚은 이른바 ‘불만의 겨울’은 당시 노동당 정부를 무너뜨리고 대처 총리를 권좌에 올리는 계기가 됐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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