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 참패... 하원서 101석 줄어
멜랑숑의 좌파연합 1야당으로
극우 국민연합 ‘의석 10배’ 제2야당
엘리자베트 보른 프랑스 총리가 19일 총선 뒤 입장을 밝히는 연설을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이끈 ‘범여권’이 19일 열린 총선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재선 성공 두달 만에 치러진 총선에서 참패함에 따라 향후 집권 2기 국정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됐다.
프랑스 내무부가 이날 발표한 하원 2차 결선투표 결과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중도 정당 르네상스당을 포함한 여권 연합 ‘앙상블’은 총 577석 중 245석을 획득해 과반 의석(289석) 확보에 실패했다. 여권은 제1당은 유지했지만 선거 전(346석)보다 의석수가 101석이나 줄어드는 고배를 마셨다.
장뤼크 멜랑숑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 대표가 이끄는 좌파연합 ‘뉘프’(NUPES)는 131석을 얻어서 제1야당으로 올라섰다. 급진 좌파 성향인 멜랑숑은 지난 4월 대선 1차 결선투표에서 3위로 선전한 데 이어 이번 총선에서도 약진했다.
극우 성향의 국민연합(RN)은 89석을 얻었다. 지난 총선에서 8석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의석이 10배나 늘어난 것이다. 애초 국민연합은 이번 선거에서 15석 이상을 확보해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1958년 시작된 프랑스 5공화국 체제에서 극우 정당이 교섭단체 구성 의석을 획득한 것은 1986년 총선 때 한번뿐이었다. 나아가 제1야당이 급진 좌파이고 제2야당을 극우 정당이 차지한 일은 프랑스 전후 정치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마크롱 정부의 충격적인 총선 패배에 대해 <르몽드>는 “마크롱, 정치적 마비 위험”이라고 평했다.
집권 2기를 맞은 마크롱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운 △감세 △연금 개혁 △은퇴 연령 상향(62살에서 65살) 등을 추진하려면, 의회 내 다른 세력의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는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이런 전례 없는 상황은 국내외 많은 도전에 직면한 우리 나라에 위험스러운 일”이라며 의회 내 다른 정치세력의 지지를 얻기 위해 “훌륭한 타협점”을 찾는 작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대변인 올리비아 그레구아르도 “실망스럽지만 우리가 원내 제1당인 것은 변함이 없다”며 “나라를 진전시키는 데 찬성하는 모든 세력에 손을 내밀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의 대안으로는 전통적 우파 정당인 공화당이 후보로 거론된다. 그러나 크리스티앙 자코브 공화당 대표는 선거 뒤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마크롱 정부에) 반대하는 선거운동을 했으며 앞으로도 반대하는 쪽에 남아 있을 것”이라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야당은 고무된 분위기다. 멜랑숑 대표는 지지자들에게 “완전히 예상 못 한 상황”이라며 “마크롱의 선거 실패”라고 말했다. 이 정당 의원인 알렉시 코르비에르는 마크롱이 1기 정부 때부터 추진해왔던 은퇴 연령 상향 계획이 “침몰했다”고 프랑스 뉴스 전문 방송 <베에프엠>(BFM TV)에 말했다. 국민연합의 전 대표이자 4월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투표에 올랐던 마린 르펜도 “마크롱의 모험은 종착지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마크롱이 참패한 이유로는 물가 상승으로 인한 경제 상황 악화, 은퇴 연령 상향 조정안에 대한 강한 반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결선투표의 투표율은 46.46%에 그쳤다. 이날 투표에선 12일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했던 1위 후보와 등록 유권자의 12.5%가 넘는 표를 확보한 2∼4위 후보가 다시 붙어 최종 승자를 가렸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