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유조선이 13일 러시아 나홋카 만에 있는 코스미노 원유터미널에 정박해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과 유럽 등이 러시아의 석유와 석탄 등에 대한 수출 제재에 나섰지만, 국제유가가 폭등하며 의도했던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핀란드의 싱크탱크 ‘에너지와 깨끗한 대기 연구센터’(CRECA)가 13일(현지시각) ‘푸틴의 전쟁 자금조달: 침략 첫 100일간의 러시아 화석연료 수입’이란 보고서를 내어, 러시아가 2월24일부터 6월3일까지 개전 후 100일 동안 석유·천연가스·석탄 등 화석연료 수출로 930억유로(125조원)을 벌어들였다고 밝혔다. 비중은 원유와 석유제품이 63%였고, 천연가스가 32%, 석탄이 5%였다.
러시아산 화석연료의 주요 수입처는 여전히 유럽연합(EU) 회원국으로 전체의 61%를 차지했다. 유럽연합이 최근 연말까지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90%까지 감축하기로 하는 등 강력한 제재를 다짐하고 있지만, 아직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올레그 우스텐코 우크라이나 대통령 경제보좌관은 <뉴욕 타임스>에 “우리는 푸틴과 그 전쟁 기계의 자금줄을 끊어 달라고 전세계에 호소하고 있는데,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너무 오래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
화석연료 수출로 얻은 ‘막대한 수익’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가 전쟁을 수행하는 데 중요한 자금줄 구실을 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러시아가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로 벌어들인 수입은 2021년 러시아 정부 재정의 45%를 차지했다. 개전 이후 러시아가 화석연료를 수출해 얻는 수익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쓴 돈을 충분히 감당하고 남을 것으로 평가된다.
러시아의 화석연료 수출은 전쟁 초기 잇따른 국제사회의 제재로 조금 줄어드는 듯했다. 하지만 뒤이은 에너지값 폭등으로 물량 감소 효과는 곧바로 상쇄됐다. 러시아는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석유를 인도 등에 국제 시세보다 30% 정도 싸게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러시아의 석유 수출 평균 단가는 지난해보다 60% 높은 상황이다.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러시아에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전쟁 이후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23% 줄였다. 그런데도 러시아의 가스공급업체 가스프롬의 매출은 가스값 폭등으로 한 해 전보다 두 배 늘었다. 유럽은 러시아산 석유도 5월에만 18% 줄였다. 그러나 인도 등이 그만큼을 대신 사들이는 바람에 석유 수출 총량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미국은 개전 초 러시아산 화석 연료 수입을 금지했다. 하지만, 네덜란드와 인도 등에서 정유 처리를 거친 물량이 이른바 ‘원산지 세탁’의 효과를 누리며 아무 제재도 받지 않고 미국에 수출되고 있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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