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 압류된 이란 국적의 유조선 ‘페가스’. 로이터 연합뉴스
유럽연합(EU)과 영국이 러시아산 석유를 실어나르는 선박에 해상보험을 제공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31일(현지시각) 익명의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러시아산 석유를 실은 유조선에 대한 보험 제공 금지는 전날 유럽연합이 러시아산 석유의 해상수입 금지해상 조치 등을 포함한 새로운 제재안에 처음 포함된 내용이다. 이 조치와 관련해 유럽연합에서는 향후 러시아산 석유 운송 선박이 해상보험을 가입하려고 런던로이즈 보험시장으로 몰려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유럽연합과 영국이 런던로이즈 금융시장 접근마저 금지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이런 우려는 불식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유럽연합과 영국이 합의한 해상보험 제공 금지는 유럽뿐 아니라 그 외의 지역으로 가는 러시아산 석유 운반선에도 적용될 예정이다.
영국 정부는 이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지만, 이번 합의 내용을 잘 알고 있는 관계자들은 조만간 영국의 보험 제공 금지가 공식 발표될 것이라고 신문이 전했다. 한 관계자는 “이것은 유럽연합과 상호 협력 하에 추진하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해상보험 가입 금지는 러시아의 석유수출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캐나다 토론토에 본사를 둔 투자은행 ‘아르비시 캐피털 마케츠’(RBC Capital Markets)의 헬리마 크로프트는 “유럽연합과 영국의 이번 조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과소평가할 수 없다”며 “러시아의 석유수출에 큰 장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어떤 배가 러시아산 석유를 실었는지 어떻게 가려내느냐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러시아산 석유의 주요 수출항을 들르는 모든 유조선에 대해 보험 가입을 거부하는 방안도 제기되지만, 그렇게 되면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예컨대 러시아 석유수출항에서는 제재 대상이 아닌 카자흐스탄의 원유도 일부 선적된다.
몇 년 동안 이란산 석유 수송에 대해 제재하며 쌓인 경험과 노하우를 참조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시장 전문가는 “러시아산 석유인지 가리는 것이 유일하게 복잡한 문제인데,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세계에서 세번째로 많은 원유생산국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 원유값은 60% 남짓 올랐으며, 휘발유와 경유, 항공유 같은 정유값도 가파르게 치솟았다. 러시아는 그동안 미국과 유럽의 제재에 대비해 중국과 인도, 터키의 원유 수출물량을 늘렸지만, 정유 수출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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