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보수 성향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 국민연합 후보가 20일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을 앞두고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맞서고 있다. AP 연합뉴스
프랑스 대통령선거 결선투표를 나흘 앞둔 20일(현지시각) 연임에 도전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이에 맞서는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후보가 처음이자 마지막 텔레비전 토론에서 격돌했다.
중도보수 성향인 마크롱 대통령과 극우 성향의 르펜 후보는 이날 전국에 생중계된 텔레비전 토론에서 러시아와의 관계, 이슬람 여성의 히잡 착용, 경제정책 등 현안을 둘러싸고 2시간 50분 남짓 날선 공방을 벌였다고 <아에프페>(AFP) 등 외신이 보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토론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반러시아 정서가 광범한 점을 의식해 르펜 후보의 국민연합이 러시아계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사실을 집중 거론했다. 국민연합은 2014년 9월 선거자금용으로 러시아계인 퍼스트체코러시아은행(FCRB)에서 960만유로(129억원)를 빌렸다.
마크롱 대통령은 르펜 후보를 가리키며 “당신은 러시아 정부에 의존적이며 그래서 결국 푸틴 대통령에 의존적이다”라며 “당신이 러시아와 얘기할 때 당신이 돈을 빌린 은행과 얘기하는 것이 된다”고 공박했다. 그는 “당신의 이해관계가 푸틴 등 러시아 권력과 가까운 사람들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프랑스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르펜 후보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을 지지했던 사실도 끄집어내어 “왜 그렇게 했느냐”며, 그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밀접한 관계라는 점을 부각하는 데 공을 들였다.
이에 대해 르펜 후보는 “나는 절대적으로 완전히 자유로운 여자”라고 반박했다. 그는 러시아계 은행 대출과 관련해서도 프랑스와 유럽의 은행이 돈을 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러시아 은행을 찾아간 것이라며 빌린 돈은 갚아나가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마크롱 대통령이 모든 사실을 잘 알고도 이 문제를 끄집어내 공격한 것은 “정직하지 못한 것”이라고 논박했다.
반면 르펜 후보는 지난 5년 동안 마크롱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물고 늘어졌다. 그는 2018년 프랑스 사회를 휩쓸었던 ‘노란 조끼’ 시위운동을 상기시키며, 마크롱 대통령 집권 기간 프랑스가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졌고 사회적으로는 분열됐다고 비판했다.
두 후보는 이슬람 여성이 머리를 가리기 위해 쓰는 히잡을 놓고도 격렬히 대립했다. 르펜 후보는 히잡에 대해 “이슬람이 부과하는 유니폼”이라며 대통령에 당선되면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쓰는 것을 금지하겠다는 기존 주장을 재확인했다. 그는 “종교와 싸우는 것도, 이슬람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남녀평등, 세속주의, 민주주의를 저해하면서 공화국의 근간을 훼손하는 이슬람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맞서 싸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외국인의 국내 이주에 대해서도 엄격히 통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주민의 범죄 증가가 참을 수 없는 수준에 다다르고 있다며 “무정부적인 대량 이민”을 끝장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마크롱 대통령은 르펜 후보의 히잡 착용 금지에 대해 "당신이 그렇게 한다면 내전이 일어날 수 있다. 나는 진지하게 말할 수 있다”고 논박했다. 그는 계몽주의와 보편주의가 태어난 프랑스가 세계 최초로 공공장소에서 종교적인 상징을 금지하는 나라가 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유럽연합(EU)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두 후보의 입장은 결이 달랐다. 르펜 후보는 “유럽을 떠나고 싶지 않다”면서도 유럽연합을 “국가들의 연합체”로 개혁해야 한다고 비판적 시각을 견지했다. 그는 “유럽이 모든 것이 아니다”며 “유럽위원회가 주권국가를, 프랑스 국민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마크롱 대통령은 르펜 후보가 2017년 유럽연합 탈퇴를 주장했던 사실을 겨냥해 “너의 정책은 유럽을 떠나는 것”이라고 공박하며 이번 선거를 유럽연합에 대한 찬반 투표로 규정했다.
이번 토론회에 대해 프랑스 언론들은 대체로 마크롱 대통령이 공세적이었던 반면, 르펜 후보는 수세적이었다고 평가했다. 프랑스 뉴스 전문 방송 <베에프엠 테베>(BFM TV) 조사에 따르면 마크롱이 토론을 잘했다는 의견이 59%로 르펜(39%)보다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두 후보 간 결선 투표는 오는 24일 치러진다. 프랑스의 주요 여론조사에서는 마크롱 대통령이 10%포인트 안팎의 차이로 앞서고 있다. 그러나 아직 후보를 정하지 못했다는 유권자가 10% 이상 남아있어서, 승부를 속단하긴 이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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