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프랑스 뷜렌쉬르센에서 시민 한 명이 프랑스 대선 후보들 사진이 걸린 게시대 앞을 지나가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제 자정에서 1분 남았다.”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정부에서 총리를 지냈던 정치인 마뉘엘 발스는 최근 주간지 <주르날 뒤 디망슈>에 실은 글에서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 대표인 마린 르펜이 오는 10일(1차 투표)부터 열리는 대통령 선거(임기 5년)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발스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지원하기 위해 쓴 이 글에서 현재 상황을 파국에 이르기 직전인 밤 11시59분이라고 이르며, “르펜은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으로 선출될 수 있다”고 적었다. 마크롱 대통령도 2일 파리 외곽 라데팡스에서 열린 집회에서 “오늘날 극단주의자들의 위험이 몇년 전, 아니, 몇달 전보다 매우 커졌다”며 지지자들의 결집을 호소했다.
여론조사 기관 ‘해리스 인터랙티브’가 1일부터 4일까지 프랑스 유권자 253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이 발언이 엄포만은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다. 1차 투표에서 마크롱에게 투표하겠다는 이가 26.5%로 가장 많았지만, 르펜도 23% 지지율로 뒤를 바짝 쫓고 있다. 프랑스 대선은 1차에서 과반 득표를 한 후보가 없을 경우 결선투표를 치른다. 현재 상황을 보면, 24일 열리는 결선에서 마크롱과 르펜이 맞붙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마크롱과 르펜이 2차 투표에서 맞붙을 경우 양 후보 지지율은 51.5% 대 48.5%로, 3%포인트 차이로 오차 범위(±3%포인트) 안에 들어와 있다.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프랑스 대선은 마크롱 대통령이 손쉽게 재선에 성공할 수 있다는 분위기였다. 우크라이나 위기 때 적극적인 중재 외교를 펼치며 프랑스의 존재감을 전세계에 각인시킨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오른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달 초 한때 30%를 넘기며 2위와 차이가 10%포인트 이상 벌어졌었다. 하지만, 이제 격차는 3~4%포인트 안쪽으로 줄어들었다.
물론, 여전히 마크롱 대통령이 유리하다는 평가가 많다. 2002년 르펜의 아버지 장마리 르펜, 2017년 르펜이 결선에 올랐으나 최종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다. 극우 세력의 집권을 경계한 유권자들이 결선투표 때마다 상대 후보에게 ‘몰표’를 던지며 저항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분위기는 지난 대선이 치러진 2017년과 크게 달라졌다. 5년 전만 해도 마크롱은 젊은 중도 개혁 정치인 이미지였으나 지금은 현직 대통령으로 기성 정치인 이미지가 강해졌다.
게다가 프랑스 정치의 현실을 보면, 자크 시라크(1995~2007년 집권) 이후 연임에 성공한 프랑스 대통령이 없다. 또 그동안 꾸준히 우경화도 진행돼 이번 대선에서 지지율 4위 이내에 포함된 좌파 후보는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당’의 장뤼크 멜랑숑뿐이다. 르펜 역시 최근 이민이나 문화 같은 이데올로기적 이슈보다는 물가 상승 같은 서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경제 문제를 부각하며 극우파 정치인이라는 거부감을 누그러뜨리고 있다. 또 “대부분의 (마약) 밀매자는 흑인과 아랍인이다” 같은 발언을 했던 극우 후보 에리크 제무르의 등장으로 르펜의 극우 이미지가 상당 부분 희석되고 있다.
해리스 인터랙티브의 연구원 피에르아드리앵 바르톨리는 <파이낸셜 타임스>에 “르펜이 이기려면 두가지 일이 일어나야 한다. 좌파가 마크롱 대통령에게 투표하지 말아야 하고 전통적 우파 중 무시하지 못할 비율이 그에게 와야 한다”며 “르펜의 승리는 일어나기 어려운 시나리오고 여전히 마크롱의 승리 확률이 높다”고 예측했다. 하지만, 최근 프랑스 사회 내 변화를 언급하며 르펜의 승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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