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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영상] 탈출·참전 교차하는 역사…조국 지키려 되돌아간다

등록 2022-03-17 04:59수정 2022-03-17 07:43

고향에 남아 있는 가족들도 돌보려
타국에 돈 벌러 갔다가 급히 귀국
“신이 함께한다면 이길 수 있겠죠”
14일(현지시각) 오후 3시께 우크라이나 오데사 출신 나디야가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입국 수속을 기다리고 있다. 프셰미실/노지원 기자
14일(현지시각) 오후 3시께 우크라이나 오데사 출신 나디야가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입국 수속을 기다리고 있다. 프셰미실/노지원 기자

14일(현지시각) 오후 3시, 폴란드 프셰미실 기차역 5번 승강장 앞. 기다란 행렬이 두 개 생겼다. 하나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출발해 이제 막 국경을 넘은 기차에서 내린 승객들의 줄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차례로 입국 수속을 밟는다.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이들은 대개 국경을 맞댄 작은 도시 프셰미실을 통해 입국하게 된다.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기차가 도착한 뒤에도 행렬은 한 시간이 넘도록 이어진다. 전체 난민 300만381명 가운데 폴란드로 넘어온 이들은 15일 현재 183만명이다. 난민 행렬 옆엔 줄이 하나 더 있다. 오후 3시께 50~60명이었던 사람들은 기차 출발 시각이 다가오자 100명 정도로 늘었다. 3시45분 프셰미실을 떠나 키이우로 가는 귀향 열차를 타는 이들이다. 짐 가방을 든 모습은 국경을 넘은 이들과 비슷하지만, 분위기는 어딘가 다르다. 어린아이를 업거나 안고 있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떠나오는 이들보다 표정이 미묘하게 편안해 보인다.

폴란드에서 일하던 나디야(32)는 귀향 줄에 커다란 배낭 한 개와 같이 섰다. 그의 고향은 제3의 도시이자 세계적 곡창지대로 우크라이나 곡물을 전세계에 수출하는 남부 거점 항구도시 오데사다. 세계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작 <전함 포템킨>(1925)에 등장하는 계단으로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돼 있다. 오데사 시민들은 한 세기 전 차르의 폭정에 맞섰던 것처럼, 도시로 침입하는 러시아군의 탱크를 막아내기 위해 방어물을 세우고 모래주머니로 벽을 만들며 결사항전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나디야는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전쟁이 시작된 뒤 곧바로 귀향 준비를 시작했다. 직장과 살던 집을 정리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회사 사장한테는 ‘이제 일을 그만두겠다. 언제 돌아올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살던 집 주인에게도 방을 빼겠다고 통보했다. 원래는 돈을 좀 더 벌다 여섯달쯤 뒤에 돌아갈 작정이었다. 고향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엄마와 아빠, 형제들이다. “(우크라이나) 안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야 해서요. 그래서 돌아갑니다. 가족들은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아 하니 내가 가야죠. 여기서 매일 걱정만 하느니 같이 있는 게 나아요.”

나디야는 귀향과 동시에 수시로 방공호에 드나들어야 한다. 다행히 오데사를 향한 러시아군의 공세는 최근 며칠 새 다소 누그러진 상태다. “얼마 전엔 굉장히 위험했지만, 지금은 좀 나은 거 같아요. 신이 우리와 함께한다면 이길 수 있겠죠.”

14일(현지시각) 낮 폴란드 프셰미실역 입출국 전용 5번 승강장 들머리에서 우크라이나로 출국하려는 사람들 옆으로 우크라이나 키이우와 르비우를 거쳐 프셰미실에 도착한 열차에서 내린 승객들이 입국 절차를 마친 다음 나오고 있다. 프셰미실/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4일(현지시각) 낮 폴란드 프셰미실역 입출국 전용 5번 승강장 들머리에서 우크라이나로 출국하려는 사람들 옆으로 우크라이나 키이우와 르비우를 거쳐 프셰미실에 도착한 열차에서 내린 승객들이 입국 절차를 마친 다음 나오고 있다. 프셰미실/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볼로디미르(45)도 나디야와 같은 줄에 섰다. 여섯달 전 폴란드에 돈 벌러 왔지만, 이제 배우자와 아이들을 보호하려 남동부 빈니차의 집으로 간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라를 지킬 겁니다.” 그는 참전할 계획이다. 나디야와 볼로디미르보다 뒤에 선 알렉스(43)는 서부 르비우로 간다. 우크라이나에서 나고 자랐지만 커서는 이스라엘에서 일했다. 알렉스의 직업은 심리치료사다. “전쟁으로 인한 충격 때문에 마음이 아픈 사람이 많아요. 가서 그들을 도우려 합니다.” 돌아가는 이들의 앞엔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언젠가, 이들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프셰미실/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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