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8일 영국 하원에서 10분여에 걸친 비디오 연설을 끝내자 회장에 모여 있던 의원들이 모두 기립해 박수를 치고 있다. 런던/AFP 연합뉴스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이고, 육지에서도 싸울 것이고, 벌판에서도 싸울 것이고, 언덕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8일 영국 하원에서 진행된 화상 연설에서 2차 세계대전 개전 초기 절망적인 전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국민들의 항전 의지를 북돋웠던 윈스턴 처칠 전 총리의 1940년 6월4일 연설을 인용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 연설에서 러시아를 “테러 국가”라 부르며 “우리는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패배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끝까지 갈 것”이라며 강한 항전 의지를 거듭해 드러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 연설을 들은 하원의원 “모두의 마음을 흔들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야당인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 대표도 젤렌스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용기와 결단을 칭송하면서 “그가 자신의 강함을 보여줬다. 이제 우리가 그와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우리의 결의와 지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이 인용한 처칠의 연설은 프랑스가 독일의 전차군단이 감행한 ‘전격전’에 뒤통수를 맞아 큰 위기에 빠지고, 수많은 영국 병사들이 프랑스 북부 덩케르크 해변에서 가까스로 빠져 나온 상황에서 나온 것이었다. 당시 영국에선 독일과 타협을 통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지만, 처칠 총리가 택한 길은 ‘결사 항전’이었다. 결국 이 선택이 미국의 참전을 이끌어내 연합국이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게 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8일 영국 하원에서 진행된 온라인 연설에서 1940년 6월 윈스턴 처칠 총리의 유명한 연설을 인용해 가며 영국 정부의 아낌 없는 지원을 요청했다. 런던/AFP 연합뉴스
영국에선 토니 블레어 총리가 2003년 미국과 함께 이라크 전쟁에 임하면서 이 연설을 인용한 바 있다. 영국이 역사적으로 가장 힘들었을 때 용기를 얻었던 연설문을 인용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국 의원들과 시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얻으려 한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이런 의도를 숨지지 않으며 “영국인들이 이미 들었던 말들을 떠올려 보려 한다”며 연설문를 인용했다. 러시아의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 침공이 2차 세계대전 때와 같이 인류의 운명을 건 ‘세기적 사변’임을 강조하려는 의도도 읽힌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지난 1일 취임 후 첫 국정 연설에서 “자유는 언제나 폭정을 이길 것이다. 6일 전(지난달 24일) 블라디미르 푸틴이 그의 위협적 방식에 고개를 숙일 것이라 기대하면서 자유세계의 기초를 흔들려고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크게 오판했다”고 선언했다. 현재 인류가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간의 대립을 뜻하는 살벌한 신냉전의 시기로 접어들었음을 공식화한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어 영국의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햄릿>에서 사용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유명한 문구를 인용한 뒤 “(전쟁이 벌어진 지) 13일이 지났고, 이 질문은 여전히 우크라이나에 유효하다. 우리는 살아야 한다. 살아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당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해달라, 당신들이 해야만 하는 것을 해달라. 위대한 국가와 국민들은 위대함을 실현해야 할 의무를 진다. 우크라니아에 영광을, 영국에 영광을”이라는 말로 10분에 걸친 짧은 연설을 끝냈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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