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난민이 4일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 도착해 쉬고 있다. 부쿠레슈티/AFP 연합뉴스
전쟁을 피해 며칠씩 잠도 못 자고 제대로 먹지 못하고 탈출에 나선 우크라이나인들은 국경을 넘은 뒤 비로소 이웃 나라 주민들의 따뜻한 환대와 지원에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제 앞으로 어떻게 이 험한 시간을 살아내야 할지 막막함에 걱정이 앞선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벌써 국경을 탈출한 우크라이나인이 100만명이 넘었다. 이들이 어떤 고초를 겪고 어떻게 난민의 삶을 준비하는지, <워싱턴타임스>가 3일(현지시각) 막 국경을 넘어 몰도바로 피신한 한 가족의 하루 일상을 통해 소개했다.
이라 이바니츠카야(46)는 우크라이나의 항구도시 오데사에서 미용사로 일했다. 러시아의 침공 전날에도 늘 그렇듯 오후 6시까지 손님들의 머리를 다듬었는데, 미용실에선 어느 누구도 불과 몇 시간 뒤 러시아군이 공격할 거라곤 꿈도 꾸지 못했다.
이라는 집에서 아들 로만(7)과 함께 멀리 포성을 들으며 집에 포탄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직장 동료 아냐 야보르크사야(40)가 아들 데미안(9)과 함께 새파랗게 질린 채 피신을 왔다. 그의 집은 군사시설 옆이어서 더 위험했다. 옷을 모두 입은 채 누워 잠을 청했으나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하는 두려움에 잘 수 없었다.
결국 이라는 동료 아냐와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피난길에 올랐다. 부모님은 우크라이나에 남겨 놓은 채였다. 국경을 넘을 때까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어떻게든 전쟁을 피해 살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허름한 여행가방 하나 들고선 국경을 넘어 몰도바에 들어서고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몰도바 국경에선 오데사에서 알고 지내던 타티아나의 주선으로 겨우 임시로 쉴 민가를 찾을 수 있었다. 타티아나는 전쟁이 터지자마자 먼저 국경을 넘어 피신한 친구였다.
국경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의 농가엔 두툼한 담요와 따뜻한 샤워가 기다리고 있었고, 부엌에선 집주인 루드밀라 이아로르시(55)가 음식을 준비 중이었다. 그는 이라 일행을 보자 “집을 떠난 것은 아이들을 위해 잘한 결정”이라고 위로해 주었다.
저녁을 먹고 나선 주변 다른 집에 묵고 있는 우크라이나인들과 모여 앉았다. 와인을 마시며 전쟁 관련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했다. 이라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가리키며 “마치 히틀러처럼 새벽 4시에 우리를 공격했다”며 “나는 정말 화가 난다”고 말했다. 타티아나는 “그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맞받았다.
이라는 그래도 이렇게 앉아 이야기하니까 스스로 긴장이 풀리는 게 느껴진다. 지난주 내내 그는 목이 졸린 듯 숨조차 쉬지 못할 것 같은 팽팽한 긴장을 느껴왔다. 몰도바 국경에 다가와서도 보드카라도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날 밤 루드밀라 집에서 이라는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편안한 잠을 잤다. 한적한 몰도바의 마을 하늘엔 경계하고 주의해야 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라는 몰도바에서 며칠 보내며 몸과 마음을 다스린 뒤 버스를 타고 루마니아, 헝가리를 거쳐 독일로 갈 계획이다. 독일엔 함께 온 동료 아냐의 형제가 살고 있다. 오데사를 탈출할 때 머리빗과 가위도 갖고 왔다. 독일에서도 미용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침이 되자 모처럼 편한 잠자리에서 잠자고 일어난 이라는 다시 냉혹한 현실로 돌아왔다. 당장 오늘 밤을 보낼 숙소부터 찾아야 했다. 이곳에는 오늘 국경을 막 넘은 우크라이나인 12명이 올 예정이다. 이라 일행은 그들에게 두툼한 담요와 따뜻한 샤워를 넘겨줘야 했다. 이라 일행은 소셜미디어에 두 여자와 두 아이가 머물 곳을 구한다는 메시지를 올린 것에 희망을 걸고 있다.
루드밀라가 들어와 이라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둘은 함께 울었다. 루드밀라는 자신도 한때 전쟁의 피해자라고 느낀 적이 있다며 이라를 위로했다. 1990년대 초 몰도바 내전 때 그의 집에서 10㎞ 떨어진 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전투에 나갔던 남편은 살아 돌아왔지만, 이웃집에선 전사자가 나왔다.
점심때가 되었고 루드밀라는 다음 손님을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이라와 아냐는 아직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다. 난민 생활 이틀째가 그렇게 시작됐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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