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새로 산 군화를 든 남성들이 도보로 우크라이나로 돌아가기 위해 메디카 국경검문소 앞에 줄을 선 모습. 메디카(폴란드)=연합뉴스
우크라이나와 살을 맞댄 폴란드 동부 국경 도시 메디카에는 최근 우크라이나로 입국하려는 젊은이들이 줄을 잇고 있다. 풍전등화의 운명에 놓인 조국을 위해 총을 들겠다고 결심한 우크라이나인들이다.
28일(현지시각) 메디카 국경 검문소를 통과한 한 남성은 <에이피>(AP) 통신에 “우리는 조국을 방어해야 한다. 우리가 안 하면 누가 하나”라고 말했다. 또 다른 남성은 “러시아인들이 우리를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의 한 남성이 28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로 돌아가 싸우겠다며 폴란드 국경 도시 메디카에 와 있다. AP 연합뉴스
폴란드 국경경비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24일부터 28일까지 닷새 동안 2만2000여명이 국경을 넘어 우크라이나로 향했다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지도부가 수도인 키예프(키이우) 사수를 외치며 결연한 저항 의지를 보이자, 우크라이나인들이 복잡하게 얽힌 정치적 차이를 뛰어넘어 하나로 뭉치는 모습이다.
러시아 탱크에 맞서기 위해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화염병을 만드는 모습은 이 전쟁이 우크라이나가 진정한 국민국가로 거듭나기 위한 ‘각성의 시간’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독립을 손에 넣었지만, 지난 30여년 동안 특권 계급으로 인한 퇴행적 정치 문화와 국론 분열로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던 우크라이나가 비로소 하나가 된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24일(현지시간) 폴란드 프셰미실 중앙역에서 키예프로 돌아가는 기차를 기다리던 니콜라(왼쪽)와 이고르. 프셰미실(폴란드)=연합뉴스
전쟁을 개시하기 이틀 전인 22일 무려 55분간 이어진 대국민 담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진정한 의미의 독립국이었던 전통이 없다”며 우크라이나의 국가성을 부정했다. 그는 또 “현대 우크라이나는 완전히 러시아가 만든 것” “(우크라이나는) 우리(러시아) 역사, 문화, 종교 공간의 분리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우크라이나인들의 민족적 자존심에 상처를 줬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2004년 민주화 시위인 ‘오렌지 혁명’ 이후 유럽연합(EU)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통해 러시아와 다른 ‘자신만의 길’을 가기 위해 모색해왔다. 러시아의 견제로 친러시아 정책을 추진한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2010년 집권했지만, 이 노선에 맞서다 2013년 유로마이단 혁명을 통해 탄핵당했다. 그 직후인 2014년 3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뒤이어 터진 동부 내전은 우크라이나인들이 ‘각성’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후 우크라이나는 서구적 개혁을 본격 추구해 가기 시작한다.
28일 우크라이나 북부 지토미르에서 시민들이 러시아군의 침입에 대비해 화염병을 만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국제공화문제연구소(IRI) 여론조사를 보면 우크라이나인들의 인식 변화가 잘 드러난다. “우크라이나가 국제적 경제 연합 중 한 곳만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곳을 선택하겠는가”라는 질문에 2012년 우크라이나인의 43%는 옛 소련 구성국인 러시아·카자흐스탄·벨라루스와 연합해야 한다고 답했다. 유럽연합을 꼽는 이들은 36%에 불과했다. 그러나 2021년 11월 조사 때는 유럽연합이라고 답한 이가 절반을 넘는 58%에 달했다. 한 우크라이나인은 “유럽연합 가입이 비정상적인 지배체제를 정상적이고 책임 있는 민주주의로 되돌리기 위한 방편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키예프를 둘러싼 포화 속에서도 ‘유럽연합의 즉시 가입’을 요구하며 목을 매는 이유다.
문화적 정체성도 강화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패션잡지 <엘르> 우크라이나판은 처음으로 표지에 러시아어 대신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했다. 우크라이나에서 도시 엘리트층은 러시아어를 쓴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 증거라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짚었다. 우크라이나 <엘르> 편집장인 소냐 자보우하는 2014년 사태가 이런 변화가 생기는 “강한 동인이 됐다. 많은 사람이 태도를 바꿨고 (우리가) 우크라이나인이라는 것에 대해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종교적 독립도 무시할 수 없는 변화다.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2019년 330여년간 속해 있던 러시아 정교회 관할권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을 지냈던 파울로 클림킨은 <월스트리트 저널>에 “시계는 푸틴과는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나라(우크라이나)는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피비린내 속에서 세계는 하나의 국민국가가 탄생하는 장엄한 과정을 목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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