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국민들이 27일 현금을 찾기 위해 현금자동인출기(ATM) 앞에 줄지어 서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 국민들이 서구의 경제제재로 인한 현금 부족 등을 우려해 현금자동인출기(ATM) 앞에 긴 줄을 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침공 결정이 평범한 러시아인들의 삶에도 적지 않은 고통을 안기고 있는 셈이다.
<로이터> 통신은 27일(현지시각) 서구의 경제제재 이후 은행 앞에 늘어선 러시아 시민들의 동향을 보도했다.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사는 주민 피요트르는 통신에 “24일부터 모두 현금자동인출기에서 현금자동인출기로 뛰어다니고 있다”며 “어떤 사람은 돈을 빼내는 데 성공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러시아인들이 은행 앞에 줄을 서는 것은 서구의 경제제재로 은행 카드로 물건 구매 대금을 치르지 못하게 되거나 은행이 현금 인출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서구가 스위프트(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 거래망에서 러시아를 배제하는 등 금융제재에 나선 것이 러시아 경제에 큰 타격을 안길 것이라 지적해 왔다.
러시아 은행들은 현금 공급과 온라인 거래에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고객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러시아 최대은행 ‘스베르뱅크’는 고객들이 은행의 결제시스템을 이용해 거래를 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국영개발은행인 ‘브이이비’(VEB)도 외부의 제재가 러시아 내부의 프로젝트를 금융 지원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러시아 중앙은행은 가장 심한 제재 대상에 오른 다섯 은행에서 운용하는 단말기나 온라인 가게에선 모바일 지불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며, 고객들에게 은행 카드를 갖고 다닐 것을 권고했다. 모스크바 주민 세르게이는 “나는 플라스틱 카드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21세기 삶에 익숙하다”며 “나는 카드를 들고 다녀야 하는 게 싫다”고 말했다.
서구의 제재가 러시아 경제에 중장기적으로 파괴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전 러시아 총리 마하일 카시아노프는 트위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서구가 중앙은행 보유액을 동결하는 것이다. 그러면 (러시아의 화폐인) 루블을 지탱할 게 아무것도 없게 된다. 인쇄기에 의존해야 한다. 초인플레이션과 경제 재앙이 멀지 않다”고 썼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자산동결에 대한 논평 요구에 아무 응답하지 않았다고 <로이터>가 보도했다.
서구의 제재에 대해선 냉소적인 목소리도 흘러 나오는 중이다. 러시아인 타니아나는 원래 가진 게 별로 없어서 제재로 새삼 고통 받을 것도 많지 않을 것이라며 러시아인 대부분이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러시아인은 몇년 동안 좋을 때도 있었고 나쁠 때도 있었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이번에도 잘 극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