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7일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해 대형 탁자를 사이에 두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사태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고조되며, ‘중재자’를 자처했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머쓱한 처지가 됐다. 4월 대선을 앞두고 벌인 광폭 외교에 성과가 없자, 야당에서는 “정치 쇼”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교부 장관은 22일 기자회견에서 오는 25일 파리에서 열기로 한 프랑스-러시아 외교장관 회담 계획에 대한 질문에 “취소한다”고 답했다. 엘리제궁은 전날인 21일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내놓은,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시아 반군 세력이 세운 자칭 ‘국가’들의 독립을 승인한다는 결정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엘리제궁의 고위 당국자는 기자들에게 푸틴 대통령이 이날 밤 한 대국민 담화에 대해 “편집증적”이라고 비난했다.
불과 며칠 전인 20일까지만 해도 마크롱 대통령의 ‘중재 외교’는 빛을 발하는 듯했다. 20일 푸틴 대통령과 1시간 반가량 전화회담, 이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15분간 전화회담을 마친 뒤 다시 푸틴 대통령과 1시간 통화했다. 이 연속 회담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미·러 정상에게 회담을 제의했고, 백악관은 이날 밤 정상회담을 열기로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다음날인 21일 푸틴 대통령이 친러 세력이 세운 자칭 ‘국가’들의 독립과 주권을 인정하는 문서에 서명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화려한’ 중재 외교에 대해선 오는 4월10일(결선투표 4월24일) 열리는 대선을 앞두고 외교적 성과를 내려 한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프랑스 대선 후보 등록일은 다음달 4일이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재선 도전 선언도 없이 외교에 힘을 집중해왔다. 하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자 경쟁 후보들은 이를 공격 지점으로 삼고 있다.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의 대선 후보인 마린 르펜의 대변인은 마크롱 대통령의 중재 외교에 대해 “대통령이 사랑하는 정치 쇼의 일종”이라며 “뚜렷한 결과는 없다. 왜냐하면 결정은 미국과 러시아가 하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대선 출마 선언을 한 극우 방송인 에리크 제무르도 마크롱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며, 러시아는 프랑스를 “워싱턴의 꼬마 배달원”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의 중재 외교를 실패라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프랑스 홍보업체 엠시비지(MCBG)의 대표인 필리프 모로 셰브롤레는 <아에프페>(AFP) 통신에 “마크롱이 (대러 외교에) 실패했다고 해도 그는 유럽의 노력을 이끌었다”고 평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마크롱 대통령은 결선투표에서 유력 야권 후보 누구와 대결해도 승리한다고 나온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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