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레나 베르보크 독일 외무장관이 15일 체첸인 살해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 뒤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베를린/로이터 연합뉴스
독일 정부가 2019년 벌어진 체첸인 살해 사건과 관련해 러시아 외교관 2명을 추방하면서 이미 크게 경색된 양국 관계가 더 악화될 전망이다.
독일 외교부는 15일 수도 베를린에서 발생한 체첸인 살해 사건과 관련된 러시아 외교관 2명을 추방하기로 했으며, 아날레나 베르보크 외교장관이 주독일 러시아 대사를 초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에이피>(AP) 통신은 추방 대상은 러시아 정보기관 관련자들이라고 전했다.
베르보크 장관은 전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과 통화에서 이 사건을 “독일 법과 주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고 규정하며 양국 관계에 “무거운 부담”을 주고 있다고 항의했다.
이날 독일 정부의 조처는 베를린 지방법원이 살인 혐의를 받아온 바딤 크라시코프의 유죄를 인정하면서 러시아 정부를 직접적인 배후로 지목한 뒤 나온 것이다. 그는 2019년 8월 베를린의 공원에서 러시아 정부의 추적을 받아온 조지아 국적의 체첸인 젤림칸 칸고슈빌리를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러시아 기관원으로 짐작되는 크라시코프는 가짜 신분과 위조된 여권을 이용해 독일에 입국했다.
희생된 칸고슈빌리는 2001년부터 체첸에서 러시아군과 싸우고 2004년에는 러시아 경찰서를 습격한 인물이다. 그는 2016년 독일로 이주해 망명을 신청한 상태였고, 독일로 오기 전에도 암살 시도를 겪었다.
베를린 법원은 여러 증거들과 증언을 종합한 결과 이 사건은 “러시아 중앙정부가 범죄의 입안자”인 “국가 테러리즘”이라고 결론 내렸다. 또 러시아가 칸고슈빌리를 노릴 정치적 동기가 충분했다고 판단했다. 사건 직후 독일 정부는 러시아 정부가 관련됐을 가능성을 지적하며 외교관 2명을 추방한 바 있다. 당시 이 사건으로 양국 관계가 경색된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살해당한 칸고슈빌리를 “테러리스트이자 살인자”라고 불렀다.
세르게이 네차예프 주독일 러시아대사는 이번 판결에 대해 낸 성명에서 “이 판결은 객관적이지도 않고, 정치적 동기를 갖고 있다”며 “이미 복잡해진 러시아-독일 관계를 심각하게 악화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양국 관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준비설, 개통이 지연되는 독일~러시아 간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노르트스트림2를 둘러싸고 악화돼 있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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