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11일 각료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폴란드-벨라루스 국경의 이민자 사태를 놓고 유럽연합(EU)이 제재 움직임을 보이자 벨라루스가 유럽으로 향하는 천연가스관의 차단 가능성을 경고했다. 겨울이 다가오는 가운데 유럽의 취약점을 위협 수단으로 들고나온 것이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11일 “우리는 유럽을 덥히고 있는데 그들이 우리를 위협한다”, “천연가스 공급을 끊으면 어떨까?”라고 각료들과의 회의에서 말했다고 벨라루스 대통령궁이 밝혔다. 그는 “그들이 추가 제재를 가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대응할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의 경고는 벨라루스가 중동 출신 이민자 2천여명을 일부러 유럽연합 회원국인 폴란드 쪽으로 내몰고 있다는 주장에 따라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나왔다. 그는 유럽이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은 상황을 이용해 자국을 지나는 가스관을 차단할 수 있다고 위협한 것이다. 벨라루스가 유럽을 혼란에 빠트리려고 이주민들을 국경으로 보내고 있다고 보는 유럽연합은 다음주 발표를 목표로 벨라루스에 대한 제재를 논의하고 있다.
파올로 젠틸로니 유럽연합 경제 담당 집행위원은 루카셴코의 위협에 대해 “겁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주요 천연가스관 2개가 지나가는 벨라루스의 위협은 현실화될 경우 큰 피해를 낳게 된다. 유럽이 천연가스를 무기로 삼아 자신들을 옥죄려 한다며 러시아에 공급 확대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벨라루스까지 가스관을 무기로 삼겠다고 선언한 것도 심각한 대목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 이번 사태와 관련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두번째로 통화하며 벨라루스가 “하이브리드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길목에 있는 국가의 가스관 차단이라는 또다른 하이브리드 공격 가능성이 떠오른 셈이기도 하다. 유럽연합과 폴란드 정부는 벨라루스가 폴란드를 통해 독일로 갈 수 있다며 이주민 2천여명을 국경으로 꾀어냈다고 밝힌 바 있다.
폴란드-벨라루스 국경 이주민 사태는 유엔 차원의 문제로도 비화됐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서구 국가들이 이날 긴급회의 뒤 “사람들 목숨이 벨라루스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위험에 처했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국경 지대 숲속에서 이주민들이 찬 날씨에 무방비로 방치된 상황을 말한 것이다. 안보리의 서구 국가들은 “자국의 인권침해에 대한 관심을 돌리려고 유럽연합의 경계를 혼란에 빠트렸다”며 루카셴코 대통령을 비난했다.
유럽과 미국 등은 이번 사안을 독재자 루카셴코 대통령의 유럽에 대한 도발로 보지만, 벨라루스의 이웃나라이자 ‘형제국’인 러시아는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통화에서 유럽연합 국가들과 벨라루스가 대화로 문제를 풀기 위한 접촉을 재개해야 한다고 밝혔다고 크렘린궁이 밝혔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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