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에너지 관련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올해 노벨 평화상 공동 수상자인 자국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에 대해 노벨 평화상은 ‘방패’가 될 수 없다는 취지의 싸늘한 발언을 했다.
푸틴 대통령은 13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에너지 관련 행사에서 푸틴 정권에 대해 비판을 가해 온 러시아 독립신문 <노바야 가제타>의 편집장 무라토프에 대해 “러시아 법률을 위반하고 노벨 평화상을 방패처럼 사용한다면, 그건 의도적인 것”이라고 말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이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8일 노벨 평화상 발표 이후 이에 대해 침묵해 왔다.
<노바야 가제타>는 그동안 푸틴 정부에 대해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보도를 해왔다. 그 와중에 ‘체첸 전쟁’의 잔혹한 실상을 파헤치는 기사를 썼던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 등 소속 기자 6명이 살해됐다. 무라토프 편집장은 노벨평화상 수상 뒤 이 상은 “숨진 기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 발언은 무라토프와 <노바야 가제타>가 러시아에서 ‘외국 스파이’라는 딱지나 다름없는 “외국 대리인”으로 지정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무라토프가 ‘외국 대리인’으로 지정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무라토프가 러시아 법률을 위반하지 않고 그를 ‘외국 대리인’으로 선언할 이유가 없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지난 2012년 외국에서 재정지원을 받는 단체를 ‘외국 대리인’으로 지정하는 법률을 만들었고 이후 몇차례 개정을 통해 단체가 아닌 개인도 대상이 될 수 있도록 적용 범위를 넓혔다. 지정되면 정기적으로 당국에 활동 내용 등을 신고해야 한다. 언론사의 경우에는 광고주가 광고를 꺼리기 때문에 경영상 어려움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무라토프는 외국 대리인 지정 우려 때문에 노벨 평화상을 받지 않을 생각도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아니다”며 상을 받을 생각을 거듭 밝혀 왔다. 소설 <닥터 지바고>로 유명한 작가 파스테르나크는 소련 시절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으나, 소련 내에서 체제에 부정적인 글을 쓴다는 비난이 일자 수상을 거부했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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