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폴 벨몽도(왼쪽)가 1964년 영화 <백파이어>에 함께 출연한 미국 배우 진 세버그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누벨바그 영화의 총아이며 프랑스 ‘국민 배우’로 불려온 장폴 벨몽도가 88살을 일기로 별세했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벨몽도가 6일 파리의 집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보도했다. 벨몽도는 1950~60년대 누벨바그 영화의 기수인 장뤼크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1960)를 통해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액션, 스릴러, 코미디 등 여러 장르에 걸친 영화 80편에 출연했다.
벨몽도는 1993년 파리 교외의 부촌 뇌이쉬르센에서 유명 조각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학교 성적은 신통찮았으나 권투를 잘했고, 연극무대에서 배우 생활을 시작하고 영화계에는 1957년 데뷔했다.
벨몽도는 거칠고, 폭력적이며, 저항적인 역할을 자주 맡으며 자기 이미지를 구축했다. 고상하고 복잡하다는 프랑스 영화와 프랑스 배우의 전통적 상과는 거리가 있었다. <리우의 사나이>(1964), <아카풀코에서 온 사나이>(1973) 등 50여년간 출연한 영화들은 1억3천만 관객을 모았다. <뉴욕 타임스>는 역시 부르주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거칠고 반항아적인 주인공을 연기한 비슷한 시대의 미국 배우 험프리 보가트, 말런 브랜도, 제임스 딘이 벨몽드와 비교되고는 했다고 전했다. 무정하면서도 우수에 젖은 듯한 표정, 특유의 미소, 주저앉은 ‘복서의 코’는 벨몽드의 연기와 개성을 상징했다. <타임>은 1964년 그를 “현대 프랑스의 얼굴”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벨몽도는 영화 제작자로도 활동하고 노년에 연극무대에 다시 서기도 했다. 그러나 2001년 뇌졸중 탓에 활동을 접어야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벨몽도의 별세 소식에 올린 트위트에서 그를 “국보”로 부르며 “우리 모두는 벨몽도 안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은 “모든 사람이 그의 친구가 되기를 원했다”고 했다. 같은 세대 배우이면서 라이벌로도 불렸던 알랭 들롱(86)은 벨몽도를 잃었다는 사실에 “완전히 부서진 듯한”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고 <아에프페>는 전했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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