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오른쪽)이 비비안 발라크뤼시난 싱가포르 외교장관과 푸젠성 난핑에서 양자 회담을 하기 전 ‘팔꿈치 인사’를 하고 있다. 난핑/EPA 연합뉴스
미-중이 격하게 맞붙었던 지난달 알래스카 ‘2+2’ 회담 이후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광폭 외교‘를 이어가고 있다. 불과 보름 남짓 만에 10여개국과 양자 접촉을 이어가면서, 그는 ‘외부간섭 배제’와 ‘핵심이익 수호’를 되풀이 강조하고 있다. 초점이 미국에 맞춰져 있다는 뜻이다.
1일 중국 외교부의 발표 내용을 종합하면, 왕 부장은 지난달 18~19일 미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전략대화에 참석한 직후부터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지난달 22~23일엔 중국 광시좡족자치구 구이린에서 열린 중-러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했고, 이어 24일부터 터키·사우디아라비아·이란 등 중동 6개국 순방길에 올랐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1일 “지난달 30일 귀국한 왕 부장은 31일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을 대표해 중국을 방문한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싱가포르·필리핀 외교장관과 2일까지 회담을 이어간다”고 전했다. 이어 왕 부장은 2~3일엔 중국 쪽 초청으로 푸젠성 샤먼을 방문하는 정의용 외교장관과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 나설 예정이다.
왕 부장의 이같은 행보는 격화하는 미-중 갈등 속에 유럽연합(EU)과도 불화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여론을 얻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관영 <신화통신> 등이 전한 중동 순방의 성과에 대한 왕 부장의 발언이 이를 잘 드러내 준다.
먼저 왕 부장은 “중동 각국은 정치·경제·사회 문화적으로 고유한 특성이 있다”며 “100년만의 거대한 변화 국면을 맞은 가운데 코로나19까지 겹친 지금 각국은 자국 상황에 맞는 발전 경로를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강대국의 지정학적 대결이란 그늘에서 벗어나, 자주적이고 다양한 발전 방식을 각자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자기 이념을 남에게 강요하거나, 인권을 내세워 내정에 간섭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알래스카 회담 당시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중국식 민주주의’와 ‘발전모델’을 강조하며, “미국은 중국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이 없다”고 공세를 편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왕 부장은 “중국은 사적 이익 추구도, 지정학적 다툼도, 세력권 형성도 원치 않으며, 각국의 선택을 존중하고 평화적 발전에 공헌할 것”이라며 “중동 6개국도 중국의 핵심이익에 대한 확고한 지지의 뜻을 밝힌 것이 이번 순방 최대의 성과”라고 덧붙였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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