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에 앉은 여성 15명이 조용히 흐느끼고 있다. 뒤에 선 남성들이 그들의 긴 머리칼을 면도하듯 밀어낸다. 머리를 깎인 여성들은 중국 북서부 간쑤성에서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들이다. 감염의 위험성을 낮추고, 진료 활동의 편의를 위해 삭발을 결정했다고 했다.
이들의 ‘삭발식’ 장면을 담은 동영상은 지난 주말 현지 관영매체를 통해 공개됐다. 삭발까지 감행한 간호사들의 희생정신과 용기를 부각시키는 게 목적이었지만, 온라인에서 터져 나온 반응은 예상과 사뭇 달랐다. 소셜미디어 위챗에 올라온 ‘여성의 신체는 선전·선동의 도구가 아니다’란 제목의 글은 18일까지 조횟수 10만회를 넘겼다. “간호사들이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동원된 것 아니냐”, “삭발이 감염의 위험성을 낮춘다는 과학적 근거가 뭐냐”는 질타가 쏟아졌다.
누리꾼의 비난이 이어지자 간쑤성 관영매체는 해당 동영상을 삭제했다. 간호사들의 소속 병원은 “자발적으로 삭발한 것”이라고 해명에 나섰다. <블룸버그>는 19일 “간호사 삭발 동영상에 대한 역풍은 코로나19 창궐로 수많은 희생자가 나오는 데도 투명한 정보공개를 하지 않는 당국에 대한 냉소주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전했다.
코로나19의 맹렬한 확산세로 침체한 사회적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중국 관영매체는 최근 낙관적인 환자와 헌신적인 의료진에 대한 ’미담’ 소개에 집중하고 있다. 이른바 “방역의 최전선에서 전해진 감동적인 사연”이다. 임신 말기임에도 계속 환자를 돌보고 있는 간호사와 부모를 모두 코로나19로 잃고도 장례를 마치자마자 병원으로 복귀한 의사의 사연이 전해졌다. 부인이 출산하는 동안에도 묵묵히 근무지에서 출입자 발열 검사를 계속했다는 지역 일꾼의 사연도 소개됐다. 그럼에도 소셜미디어에선 열악한 의료환경과 의료진조차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할 정도로 방호용품이 부족한 현실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구수 난징대 교수(법철학)는 <블룸버그>에 “중국이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핵심적인 사실을 가린 채 미담만 강조하는 것은 더 이상 효과가 없다. 다른 경로를 통해 얼마든지 정보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과거와 같은 선전·선동 방식을 되짚어볼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발원지인 후베이성 우한에서 지난해 12월 말 처음으로 발병 사실을 알렸던 안과의사 리원량 사망 사건은 바뀐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애초 중국 당국은 온라인을 달군 애도의 목소리에 눈을 감았지만, 분위기가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는 쪽으로 번지자 즉각 태도를 바꿨다.
리넷 옹 캐나다 토론토대학 교수(정치학)는 <블룸버그>에 “리원량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것을 허용한 것은 폭발할 것 같은 여론의 불만을 낮추기 위한 일종의 압력 밸브 구실을 원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표현의 자유’란 민감한 주제를 건드는 순간 바로 검열이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스티브 창 런던대 중국학연구소 소장도 “일정 수준의 비판을 용납하고, 감동적인 사연에 집중하는 것은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토론을 차단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짚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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