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에서 15일 중국인 학생이 ‘코로나 19’ 발병 사실을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한 의사 리원량 추모식에서 언론을 통제하고 있는 중국 정부에 대한 항의 뜻을 담아 입에 ‘언론의 자유’라고 적힌 테이프를 붙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FP 연합뉴스
코로나19와 관련해 중국 지도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던 지식인과 시민기자가 잇따라 외부와 연락이 끊긴 채 행방이 묘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정치적 위기에 직면한 중국 지도부가 비판여론에 공세적으로 재갈을 물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 지도부는 사태 발생 초기부터 시진핑 국가주석이 코로나19 확산 방지 노력을 주도해왔다고 이례적으로 강조하고 나섰다.
영국 일간 <가디언> 주말판인 <업저버>는 15일 “코로나19와 관련해 시진핑 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를 정면 비판한 쉬장룬 칭화대 교수(법학)가 며칠째 연락이 끊긴 상태”라며 “쉬 교수의 소셜미디어 위챗 계정은 폐쇄됐고, 휴대전화는 불통 상태이며, 포털사이트 바이두에서도 쉬 교수의 글이 오래전 쓴 몇 건을 제외하고 대부분 삭제됐다”고 보도했다.
쉬 교수는 지난 4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분노한 인민은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제목의 글을 올려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시 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를 직접 겨냥해 비판한 바 있다. 그는 “한 사람에게 권력이 독점되면서 제도적 무능이 위험수위까지 올라갔다”며 “사실에 입각한 정보를 알리지 못하게 한 탓에 정부 각 단위별로 속임수가 만연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앞서 그는 2018년 7월 중국 지도부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으며, 칭화대 쪽은 지난해 3월 그를 직무정지한 바 있다.
후베이성 우한에서 코로나19 상황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달해온 의류업자 겸 시민기자 팡빈도 당국에 체포된 뒤 연락이 끊겼다. <홍콩방송>(RTHK)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팡빈은 지난 1일 우한지역의 한 병원 앞에 주차된 ‘우창 장의사’ 미니버스에 주검 8구가 포개져 있는 장면 등을 전하며 열악한 현지 의료 실태를 고발해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그는 지난 9일 소방관을 시켜 문을 부수고 들어온 사복경찰에 체포됐으며, 이후 연락이 끊긴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역시 우한지역 코로나19 실태를 적극 알려온 현직 변호사 겸 시민기자 천수스도 지난 6일부터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비판적 목소리가 사라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 관영매체들은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한 시진핑 주석의 ‘주도적 역할’을 적극 부각시키고 있다. 당 이론지인 격월간 <추스>(구시)에 지난 3일 열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한 시 주석의 6천여자 분량의 연설문이 실렸다고 중국 언론들은 전했는데, 이에 따르면 시 주석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보름 이상 빠른 지난 1월7일 열린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첫 대응방침을 지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신화> 통신 등의 1월7일 회의 관련 보도에는 이런 내용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시 주석의 ‘첫 지시’ 이후에도 우한을 비롯한 후베이성 당국은 지역 정치행사를 예정대로 치르는 한편, “신규 확진자가 없으며, 사람 간 전염이나 의료진 감염도 없다”는 기존 주장만 되풀이한 바 있다. 정치평론가 우창은 16일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에 “중국 지도부가 코로나19 예방·통제를 위해 시 주석이 최선을 다했다는 내용을 방어적으로 설명하고 나선 것은 전례가 없는 매우 드문 일”이라고 짚었다. 그만큼 시 주석의 리더십에 대한 위기의식이 깊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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