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폭동 혐의로 기소된 '반송중' 시위대에 대한 첫 심리가 열린 법원 앞에서 지지 시위에 나선 시민이 '폭동은 없다, 폭정만 있을 뿐'이라 쓴 손팻말을 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홍콩 경찰 당국이 체포된 ‘반송중’(중국 송환 반대) 시위대를 대거 ‘폭동’ 혐의로 기소했다. 반송중 시위대에 폭동 혐의가 적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반송중 시위를 ‘폭동’으로,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한 당국의 조처를 철회하라고 강력히 요구해 온 홍콩 시민사회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31일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등 현지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지난 28일 도심 시위 진압과정에서 체포된 49명 가운데 기소된 45명이 이날 홍콩 사이완호 법원에 출두했다. 이 가운데 1명에겐 불법무기 소지 혐의가, 나머지 44명에겐 폭동 혐의가 적용됐다. 단순 불법시위와 달리 ‘폭동’ 죄는 최대 징역 10년형에 처해질 수 있는 중범죄에 해당한다.
폭동 혐의로 기소된 이들은 남성 28명과 여성 16명으로, 16살 청소년을 포함해 학생이 13명이나 된다. 또 캐세이퍼시픽 항공사 소속 조종사와 교사, 요리사, 간호사, 전기수리공, 건설노동자 등도 포함됐으며, 41살 여성이 최고령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전 심리를 통해 이들 대부분은 통행금지(자정~오전 6시)와 주례 경찰 출두, 출국 금지 등의 조건으로 보석 석방됐다. 심리가 진행되는 동안 수백명의 시민들이 법원 주변을 에워싸고 지지 집회를 벌였다.
앞서 30일 저녁 시위대에 ‘폭동’ 혐의가 적용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들이 구금된 콰이청 경찰서와 틴수이와이 경찰서 등으로 시민들이 몰려들어 항의시위를 벌였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우산을 받쳐 든 시민들은 “순교자를 석방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가 몰리면서 경찰 쪽은 페퍼 스프레이를 뿌리며 진압에 나섰고, 일부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소총을 겨눠 빈축을 사기도 했다고 <홍콩 프리 프레스>가 전했다.
30일 밤 홍콩 콰이청 경찰서 앞에서 '반송중' 시위대에 '폭동' 혐의를 적용한 것에 대한 항의시위가 벌어지는 동안 한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소총을 조준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달 9일 100만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평화로운 행진으로 시작된 ‘반송중’ 시위는 사흘 뒤인 12일 조례 심의를 막기 위해 ‘입법회 포위 시위’에 나선 시위대와 진압경찰이 격렬하게 충돌하면서 변곡점을 맞았다. 당시 시민사회는 경찰의 과잉·폭력진압을 비판했지만, 캐리 람 행정장관과 경찰 쪽은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며 강경 대응에 나섰다.
결국 이날 시위를 계기로 홍콩 정부는 사흘 뒤인 15일 조례 추진을 중단을 선언했지만, 16일 열린 2차 행진에 200만 시민이 참여하는 등 ‘반송중’ 시위는 열기가 더해졌다. 당시부터 지금까지 시위대는 △조례 철회 △시위에 대한 ‘폭동’ 규정 사과 △폭력진압 책임자 처벌 △캐리 람 행정장관 사퇴 △체포 시위대 전원 석방 등을 5대 요구조건으로 내걸어왔다. 반송중 시위에 “폭동은 없다. 폭정만 있을 뿐”이란 구호가 등장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시민사회의 거듭된 요구에도 경찰이 ‘폭동’ 혐의를 적용하면서, 시위대의 반발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 29일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 사무 판공실 쪽이 기자회견을 통해 ‘폭력 시위 단호 대처, 조속한 법질서 복구’ 등을 주문한 직후 ‘폭동’ 혐의 적용이 이뤄졌다는 점이 시민사회를 더욱 격앙시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31일 오전 심리가 진행 중인 법원 앞에서 지지 시위를 벌인 대학생 네이선 찬(23)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에 “폭동 혐의로 기소한다고 겁먹지 않는다. 오히려 분노한다. 더욱 강력하게 싸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21일 한밤에 귀갓길 시위대를 상대로 벌어진 ‘백색테러’와 관련해 홍콩 반부패위원회(염정공서·ICAC)가 공식 조사에 착수했다. 경찰이 사건 당일 시민 보호를 위해 적절한 행동을 취했는지가 조사의 초점이다. 그간 홍콩 시민사회의 당시 경찰의 늑장 출동과 미온적 대응, 테러범과 경찰 쪽의 유착 의혹 등을 제기해 왔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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