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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100만 홍콩인 ‘검은 대행진’…“캐리 람 사퇴를” 다시 거리로

등록 2019-06-16 17:58수정 2019-06-16 22:32

행정장관 “분란 야기했다, 시민에 사과”
시민들 “완전 철폐하고 장관 물러나라”

홍콩 정부 ‘작전상 후퇴’ 배경 두고
G20 앞 논란 피하려는 중국 의도 반영설
범죄인 인도 조례를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이 2014년 ‘우산혁명’의 상징인 우산을 쓴 채 16일 이 조례의 완전한 철폐를 요구하는 행진에 다시 나서고 있다. 홍콩/EPA 연합뉴스
범죄인 인도 조례를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이 2014년 ‘우산혁명’의 상징인 우산을 쓴 채 16일 이 조례의 완전한 철폐를 요구하는 행진에 다시 나서고 있다. 홍콩/EPA 연합뉴스
1주일 전 흰색으로 물결쳤던 홍콩의 도심이 16일 오후 검은색으로 출렁였다. 100만 시민의 힘으로 ‘범죄인 인도 조례’ 추진을 중단시켰지만 시민들은 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시민들은 조례의 완전한 폐기와 행정 수반 사퇴를 요구하며 다시 모이자, 전날 조례 제정 절차의 무기 연기를 발표한 캐리 람 행정장관은 이날 시민들에게 사과했다.

홍콩 정부는 이날 공식성명을 내고 “행정장관이 정부 업무의 미비로 홍콩에 큰 모순과 분란들을 야기했다”며 “많은 대중들이 실망하고 슬퍼했다. 행정장관은 대중들에게 사과하고, 최대한 성의와 겸손으로 이를 수용할 것을 약속한다”고 발표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의 이날 사과에 앞서, 시민사회 연대체인 ‘민간인권진선(전선)’의 제안에 따라 저항을 상징하는 검은색 셔츠를 입은 홍콩 시민들은 이날 오후 행진 예정 시간(오후 2시30분)보다 1~2시간 전부터 출발 지점인 빅토리아공원 주변을 가득 채웠다. 이날 하루 내내 행진에 나선 인파는 1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됐다.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인파가 불어나면서 인근 역에서는 안전을 우려해 지하철이 무정차 통과했다”며 “이 때문에 주변 다른 역에서 내린 시민들이 행진 출발 지점까지 걸어오면서, 공식 구간보다 행진 대열이 훨씬 길어졌다”고 전했다.

전날 밤 조례 철폐를 외치다 추락사한 30대 남성을 추모하는 분위기도 시민들의 참여 열기를 더했다. 이 남성은 쇼핑몰 건물 4층 바깥에서 고공농성을 하다 떨어져 숨졌다. 주변 꽃집 앞에는 추모용 꽃을 사려는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섰다.

행진을 시작한 시민들은 “폭력을 멈춰라.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라고 외쳤다. 광범위한 정치개혁을 요구하며 79일간 도심 점거 시위를 한 2014년 ‘우산혁명’의 상징인 우산도 다시 꺼내들었다. 80대 시어머니를 비롯한 가족·친구 14명이 함께 행진에 참여한 사미리(35)는 아기를 안은 채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에 “지난주에는 아기 때문에 나오지 못했는데, 오늘은 아기 때문에라도 나와야 했다. 홍콩의 미래 세대가 자유 없이 살게 할 순 없다”고 말했다.

홍콩 정부는 거대한 저항의 물결에 일단 뒤로 물러섰다. 12일 입법회(국회 격)의 조례 심의를 막기 위해 ‘포위 시위’에 나선 시민들을 최루탄, 물대포, 고무탄으로 강경 진압한 당국은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고 조례 처리를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불과 사흘 뒤인 15일 람 행정장관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조례 처리 잠정중단을 선언했다. 그는 “조례 2차 심의는 보류할 것이며, 대중의 의견을 듣는 과정에 시한을 두지 않겠다”고 했다.

람 장관의 ‘변심’은 예상을 뛰어넘은 시민사회의 저항과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정치적 파장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 당국이 지지하는 조례 추진을 람 장관이 독자적으로 중단시켰다고 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격화하는 미-중 무역전쟁 속에 이달 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둔 중국 지도부의 정치적 고려가 반영됐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중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홍콩 문제가 쟁점화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얘기다.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홍콩·마카오 업무를 총괄하는 한정 국무원 부총리가 홍콩과 인접한 선전까지 와서 상황을 살핀 뒤 조례 추진 중단 결정을 내렸다는 주장도 나온다. 중국 외교부는 15일 겅솽 대변인 명의의 담화에서 “홍콩 정부의 결정을 존중하며, 이해한다”면서도 “홍콩의 일은 중국 내정에 속하므로 그 어떤 국가나 조직, 개인이 간섭할 권리가 없다”고 강조했다.

조례 추진이 일단 중단됐지만, 현 입법회 임기가 끝나는 내년 7월 이전에 언제든 행정장관의 통보만으로 논의가 재개될 수 있다. 실제 람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조례는 법의 허점을 메우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철회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홍콩 시민사회가 16일 거리행진을 예정대로 진행한 이유다.

민간인권진선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논의 중단이 폐기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조례 폐기는 물론 경찰의 폭력 진압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고, 이 모든 사태를 시작한 캐리 람 장관의 사임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조례 추진 중단 발표로 이 단체는 17일로 예고했던 입법회 포위 시위는 취소했다. 대신 입법회 부근에 시민 토론 부스를 설치하고 향후 대응에 관한 의견을 모으기로 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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