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중국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던 유치원 학부모 단톡방 대화 내용. 옌원쥔이라는 아이의 엄마가 아이에게 벌을 준 교사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하면서 "옌 서기의 딸에게 이게 무슨 말이냐"라고 따지고 있다. 웨이보 갈무리
중국의 비뚤어진 권력 의식을 상징하는 유행어 ‘얘 아빠가 옌서기야!’의 주인공 옌춘펑(50) 쓰촨성 광안시 부서기가 부패 혐의로 당적과 공직을 모두 박탈당하고 사법처리를 받게 됐다.
쓰촨성 기율감찰위원회는 13일 옌춘펑의 혼인 상황 및 부동산·주식 미신고, 선물 및 현금 수수, 영리 활동 종사, 권력 남용, 사적 이익 추구 등 기율 위반 문제가 드러났다며, 당적과 공직을 모두 박탈하는 ‘쌍개’ 처분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기율감찰위가 관련 사건을 모두 검찰로 이관하면서, 옌춘펑은 앞으로 뇌물 수수 혐의와 관련해 수사를 받게될 예정이다.
옌춘펑은 지난 5월 청두의 한 유치원 학부모 단톡방 대화 내용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됐다. 당시 한 원생의 엄마는 자신의 딸이 교사로부터 혼자 앉아있으라는 벌을 받은데 대해, “모든 선생과 아이들은 당장 아이에게 사과하라. 그러지 않으면 당신네 재단 경영진에게 연락해 따로 보고하라고 하겠다. ‘옌 서기’의 딸한테 그게 무슨 말인가”라고 따졌다. 아이가 친구를 때려서 벌을 받은 것이었는데, 이 엄마는 ‘옌 서기’의 가족임을 과시하며 교사의 해임까지 요구했다.
대화 내용을 갈무리한 사진은 순식간에 전국적으로 관심을 끌었다. 권력층을 향한 비난 여론 속에 아빠 ‘옌 서기’의 실제 인물로 지목된 옌춘펑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낙마해 조사를 받게 됐다. 옌춘펑 쪽은 이 엄마가 이혼한 전 부인이라 사정을 모른다고 설명했지만, 인터넷에는 “지난주에도 유치원에 와서 아이들에게 수업을 했다” “옌 서기가 종종 아이를 데리러 온다”는 글이 올라왔다. 학비가 비싼 ‘귀족 유치원’인데다 해당 지역이 고급 주택가라는 등의 주장도 제기돼 재산 은닉을 위한 위장 이혼 의혹도 불거졌다. 13일 발표된 기율감찰위의 조사 결과에 등장한 내용들이기도 하다.
이 사건은 8년 전 ‘우리 아빠가 리강이야’에 이어, ‘얘 아빠가 옌서기야’라는 유행어를 낳았다. 2010년 10월 음주운전 도중 사람을 치어 숨지게 한 운전자 리치밍(당시 22)이 자신을 제지하는 보안 요원들에게 “능력 있으면 신고해! 우리 아빠가 리강이야!”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른 사건에 빗댄 것이다. 리치밍의 부친 리강은 당시 사건이 일어난 허베이성 바오딩 지역의 공안국 부국장으로, 아들 리치밍의 행위는 중국 권력층 2세의 비뚤어진 사회 의식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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