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징허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 부국장이 22일 저녁 뉴스에 나와 불합격 백신이 시중에 유통돼 문제가 된 창춘창성바이오테크놀로지 관련 상황 및 정부 조처를 설명했다. 중국 누리꾼들은 그가 입은 피케셔츠가 명품이라는 점을 문제삼고 나섰다. CCTV 갈무리
중국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은 백신이 일부 유통·접종된 것으로 드러나 시진핑 국가주석이 ‘철저한 조사’를 지시하는 등 당국이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중국 사회는 이를 설명하려 텔레비전에 나온 관료의 옷차림과 말투를 문제삼고 나설 정도로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22일 저녁 관영 <중앙텔레비전>(CCTV)의 메인뉴스인 ‘신원롄보’에는, 쉬징허 국가약품감독관리국 부국장이 나와 문제가 된 창춘창성바이오테크놀로지에 대한 조사와 생산 중단 및 약품 회수 등 조처를 설명했다. 중국 정부가 관련 조처를 취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튿날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내용보다도 옷차림과 말투에 대한 비판이 들끓었다.
우선, 일반적으로 신원롄보에 나오는 관료들이 대부분 상표 없는 흰 셔츠나 정장 차림으로 나오는 것과 달리, 쉬 부국장은 이날 파란색 피케셔츠를 입고 나온데다 가슴엔 명품 브랜드로 분류되는 ‘버버리’ 상표가 선명하게 보였다. 한 누리꾼은 “장차관급이나 되는 사람이 감히 명품 옷 입고 텔레비전에 나와서 대중들에게 이런 사건을 설명하는가”라고 비판했다. 옷값이 약 4000위안(약 66만원)이란 이야기가 나오면서, “옷장에서 고르고 골라서 제일 싼 걸 입고 나왔겠지”라고 관료들의 부패를 비아냥대는 이들도 있었다.
시선을 한곳에 고정한 채 빠르게 말하는 쉬 부국장의 인터뷰 태도가 너무 부자연스러워서, 원고를 그대로 읽는 게 티가 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 누리꾼은 “이렇게 관심이 높은 사건에 대한 정부의 공식 답변인데 너무 수준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고 적었다. 쉬 부국장에게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쉬 부국장 인터뷰에 대한 비판은 정부와 관료들에 대한 중국 사회의 높은 불신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최근 중국에선 관료들이 명품을 걸치고 재난 등 현장 시찰에 나섰다가 논란이 된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2011년 쓰촨성에선 부현장(부군수급)이 페라가모 구두를 신고 진흙밭에 나타난 사진이 화제가 됐고, 2014년 장시성 폭우 땐 한 관료가 부하 직원의 등에 업혀 구두를 적시지 않고 물웅덩이를 지나는 사진이 논란이 됐다. 관료들의 명품 시계가 부패의 상징처럼 표적이 되자, 2013년 어느 현 서기가 팔뚝에 시계 자국만 남은 채 리커창 총리를 수행한 모습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중국 일부 인터넷 매체는 쉬 부국장 인터뷰와 그에 대한 비난 여론을 보도했지만, 24일 오전 현재 기사들은 삭제된 상태다. 중국 당국이 여론 추이를 민감하게 지켜보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불합격 백신을 생산해 유통시킨 중국 창춘창성바이오테크놀로지의 누리집이 23일 해킹당해 "너희를 벌하지 않는다면 조국의 꽃봉오리에 미안한 일"이라는 글이 떠있다. 누리집 갈무리
창춘창성의 누리집이 해킹을 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23일 이 제약사의 누리집은 정상적 접속이 되지 않은 채, 어린이가 주사를 맞는 사진과 함께 붉은 글씨로 “너희(창춘창성)를 벌하지 않는다면, 조국의 꽃봉오리에 미안한 일”이라는 글이 떴다.
지난해 11월 불합격 판정을 받았음에도 시중에 풀린 창춘창성의 디피티(DPT, 디프테리아·백일해·파상풍) 백신 주사는 25만2600개가 산둥성 지난, 쯔보, 옌타이 등 8개 도시에 공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98%에 해당하는 24만7659개는 이미 어린이 21만5천여명에게 접종됐다. 이와는 별도로 우한바이오가 생산한 불합격 디피티 백신 주사도 허베이성 스자좡, 랑팡, 딩저우 등 3개 도시의 약 14만4천명에게 접종된 것으로 확인됐다. 애초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됐던 창춘창성의 광견병 백신은 시중에 풀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산둥성과 허베이성의 위생 당국은 불합격 백신이 인체에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며 이상 반응 발생률이 높아지는 등의 현상도 관측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두 지역에서는 불합격 백신을 접종받은 어린이들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접종을 실시할 방침이다.
아프리카 순방중인 시진핑 주석은 23일 ‘중요 지시’를 내려 이번 사건이 “성질이 악렬하고 보기만 해도 몸서리를 치게 한다”며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 등을 지시했다. 창춘시 공안국은 창춘창성의 가오쥔팡 회장과 임원 4명을 데려가 조사를 하고 있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oscar@hani.co.kr
2014년 중국 장시성 수재 현장에서 한 관료가 동료의 등에 업혀 물웅덩이를 건너는 모습이 인터넷에서 "명품 구두를 적시기 싫어서 그러느냐"는 등의 비난이 나오는 등 논란이 됐다. 웨이보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