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위안가치 하락 등과 연계 보도 ‘신중’ 주문
남중국해 판결처럼 ‘무관한 나라’ 전문가들 TV출연도
‘무역전쟁 덕에 중국 현실 알았다’ 풍자글 삭제
남중국해 판결처럼 ‘무관한 나라’ 전문가들 TV출연도
‘무역전쟁 덕에 중국 현실 알았다’ 풍자글 삭제
지난 6일 서로를 향한 ‘관세 폭탄’으로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이 진행중인 가운데, 중국이 자국 여론을 강하게 거머쥐고 나섰다. 당국의 입장과는 다른 목소리도 작게나마 흘러나오고 있다.
중국 선전 당국은 최근 각 언론사에 ‘무역전쟁’을 과도하게 보도하지 말라는 지침을 보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15일 보도했다. 특히 증시 하락세나 위안화 가치 하락 등을 무역전쟁과 연계시킨 보도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주문이 내려졌다. 중앙 관영매체가 기사와 사설 등을 통해 기조를 잡으면, 지역 및 인터넷 매체들은 이를 인용하는 등 역할 구분도 규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위터나 미국 정부 당국자의 발언 등 미국의 입장을 그대로 전하는 것을 삼가라는 지시도 있었다.
중국 당국이 강조하는 내용의 뼈대는 ‘정당성’과 ‘자신감’이다. 12일 중국 상무부가 낸 성명 등에서 보듯, 중국의 대응은 미국의 ‘도발’에 참다 못해 내놓은 ‘응전’일 뿐 잘못이 아니며, 넓은 국내 시장과 무한한 성장 잠재력으로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15일 관영 <중앙텔레비전>(CCTV)에선 국내외 전문가들이 출연해 이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심지어 브라질·오스트리아 전문가까지 나왔다. 2016년 중국에 불리한 남중국해 중재 판결이 나오자 이 문제와 무관한 아프리카·중동·남미 전문가들이 이 방송에 대거 등장해 중국을 옹호했던 것을 연상케 한다.
중국 당국은 이같은 여론 통제를 통해 국내에 ‘단일 여론’을 형성하고, 이로써 내부를 단속하는 동시에 반대 여론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느 미국에 우위를 내세우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에서도 비판 여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12일 한 매체가 상무부의 입장을 그대로 실었더니, 곧장 “정부가 설명 없이 세뇌하려고만 든다”는 등 대부분 비판적 내용의 댓글이 수백개 달렸다.
독립적 성격을 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기반 매체는 정부 정책에 부정적 시각을 드러냈다가 삭제 조처를 당하는 일도 잇따르고 있다. 일각에서 화제가 됐던 ‘무역전쟁은 나에게 계몽이었다’는 글은 삭제된 상태다. 이 글은 “구글이 중국에 진출했다가 쫓겨났다는 걸 처음 알았고, (중국이 자랑했던) ‘신 4대 발명’(고속철도, 모바일결제, 공유자전거, 전자상거래)의 원천·핵심 기술엔 중국 것이 하나도 없다는 걸 처음 알았다”는 등 핵심기술 없이 미국과 대결하면서 민낯을 보이는 중국의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중국이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 사태 때의 일본이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때의 한국을 상대할 때보다는 훨씬 누그러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미래산업 전략인 ‘중국 제조 2025’의 대대적 홍보를 자제하라는 등 한결 대응 상대를 자극시키지 않는 부드러운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양제츠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은 14일 칭화대 세계평화포럼 개막식 연설에서 “개발도상국은 모두 자신의 발전을 실현하고 아름다운 생활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며 “발전 문제는 정치화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한편, 파산 위기에 내몰렸던 중국 통신장비업체 중싱(ZTE)은 13일(현지시각) 미국의 제재 조처가 해제되면서 숨통이 트였다. 미 상무부가 지난 4월16일 대북 및 대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7년간 미국 기업과 거래를 금지시킨 지 3개월 만으로, 벌금 10억달러(약 1조1330억원) 납부와 보증금 성격의 4억달러 예치, 경영진·이사회 교체 등 미국 쪽 요구를 받아들인 뒤 이뤄졌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oscar@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