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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계란은 밖에서 깨면 음식이지만, 안에서 깨면 생명이 된다”

등록 2018-04-24 20:09수정 2018-04-24 23:00

[중국 지하교회 신부 인터뷰]
동네 누구나 아는 ‘공개된 미등록 교회’
지상교회(애국회)와 달리 바티칸 권위 인정
‘외세’로 보는 중국 정부, 지하교회 탄압
“바티칸 수교설은 정치적 목적에서 나온 얘기”
중국 허베이성의 ‘지하교회’(미등록 교회)인 한 가톨릭 성당에서 미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사진은 2016년 12월11일 촬영된 것이다. 허베이/로이터 연합뉴스
중국 허베이성의 ‘지하교회’(미등록 교회)인 한 가톨릭 성당에서 미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사진은 2016년 12월11일 촬영된 것이다. 허베이/로이터 연합뉴스
중국 화북지역에 자리한 인구 2400명의 작은 농촌 마을의 평화로운 봄날 오후. 종소리가 맑게 울려퍼지는 성당에서 쑹펑더(가명) 신부를 만났다.

이곳 가톨릭 성당은 중국에서 당국의 인가를 받지 않은 이른바 ‘지하교회’다. 그러나 혹독한 탄압에 숨어든 ‘지하’의 교회는 아니었다. 마을 어귀에서 “성당은 어디냐”고 묻는 낯선 이에게 주민들은 기꺼이 길을 알려줬다. 우뚝 솟은 첨탑은 동네 어디서나 눈에 띌 법했다. 지난 18일 만난 쑹 신부는 “(우리 교회는) ‘지하교회’라기보다 ‘미등록 교회’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세계 언론은 지하교회만 교황청의 인정을 받아온 중국 가톨릭에 중대한 변화가 생길 것이란 전망 기사를 쏟아냈다. 중국과 바티칸의 수교가 임박했고, 1957년 출범한 천주교애국회(애국회) 소속의 ‘지상교회’들이 바티칸의 인정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중국에서 종교의 자유가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도 일부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당국이 인정하는 틀 안에만 종교의 자유를 국한시켜온 중국에 바티칸이 무릎을 꿇은 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컸다.

쑹 신부는 중-바티칸 수교가 아직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을 때(2001년)나 베이징 올림픽을 개최했을 때(2008년)도 수교 얘기가 나오며 중국의 ‘종교 자유’가 개선된 듯한 보도가 나왔지만 아직 (수교는)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도 대만을 고립시키려는 정치적 의도가 큰 것으로 의심한다. 중국이 바티칸과 수교하면 대만은 또 하나의 ‘수교국’을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하교회가 겪어온 혹독한 탄압도 그의 불신에 이유를 더한다. 애국회의 탄생 이듬해인 1958년 이후 거의 모든 지하교회 사제·수녀들이 감옥이나 수용소에 갇히거나 고향으로 쫓겨나 집단농장과 공장에서 노역에 시달렸다. 개혁·개방 이후 교회의 대외 활동 폭이 넓어지며 지하교회도 성장했지만, 중국 정부는 1989년 이른바 ‘3호 문건’(새로운 형세 아래 천주교 공작 강화 보고)을 통해 일부 지하교회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쑹 신부는 “박해는 끝났다”면서도 그 역사의 아픔이 가시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어떤 교우(신자)들은 할아버지 세대가 박해받던 이야기를 꺼내며 비관적인 모습을 보인다. 교황청이 이들의 괴로움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나. 수교하지 않으면 우리가 정부의 압력을 계속 받겠지만, 수교하면 교회가 신자들의 압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가톨릭 인구는 1000만명으로 추산되지만, 당국은 550만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지하교회의 아픔을 되새기고 있는 이들이 450만명에 달하는 셈이다.

한편에서는 중국 가톨릭 역사에서 애국회의 의미에 대한 고찰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국의 허가를 받는 애국회 교회는 ‘애국애교’의 기치 아래 주체성을 강조하면서 교황청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주교를 자체적으로 선출해 바티칸에 ‘사후’ 통보하는 식이다. 애국회와 중국 당국의 강경한 태도는 1848년 아편전쟁 이후 각종 불평등 조약을 통해 중국 대륙이 유린되는 과정에서 가톨릭이 제국주의의 첨병 역할을 했다는 인식 때문이다. 교황청은 초기에 파문을 경고하기까지 했지만, 애국회를 ‘이교’로 규정하진 않았다.

쑹 신부는 “계란은 밖에서 깨면 음식에 지나지 않지만, 안에서 깨면 생명이 된다”며 중국 가톨릭이 우선 내부를 정리한 뒤에 바티칸 등 외부와의 관계 설정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때때로 지상교회와 지하교회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지경까지 치닫는 내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쑹 신부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은 “중국 가톨릭 내부의 화해 노력”이다.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쑹 신부는 “10여년 전 지상교회 성당에서 오전엔 지상교회 미사를, 오후엔 지하교회 미사를 드리는 것을 추진했다. 우선 신도들끼리 차별되지 않아야 한다는 의도에서 시도한 것인데, 언제부터인가 지상교회 신부들이 ‘더 이상 못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마도 정부가 허락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이 정치와 종교의 완전한 분리를 용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화북지역의 다른 지하교회 신부는 “당국이 바라는 ‘종교의 중국화’를 이루려면 먼저 종교에서 정치를 떼내야 한다. 그런 뒤에야 문화적 보충이 이뤄질 수 있다”며 “종교가 사회적 영향력을 갖춰야 사회 내 종교의 영역도 형성된다”고 말했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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