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미국과 중국 사이에 무역전쟁의 포성이 요란한 가운데, 물밑에서는 미국이 중국에 ‘한국·일본산 대신 미국산 반도체를 구매하는 방안’ 등을 요구하며 협상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중은 지난주부터 중국시장에 대한 미국 기업의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을 놓고 비공개 협상을 진행중이라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25일 보도했다. 협상 채널은 최고위급으로, 미국 쪽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 중국 쪽은 류허 부총리가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쪽은 지난주 후반에 류 부총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미국산 자동차 관세 인하와 반도체 구매, 금융업 추가 개방을 요구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특히 이 사안을 아는 소식통은 중국 업체들의 반도체 공급선을 한국·일본산에서 미국산으로 바꾸라는 압력을 넣는 것도 미국이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흐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 600억달러(약 64조원)어치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방침에 서명하고, 중국은 30억달러(약 3조2400억원)어치의 미국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를 발표하는 등 정면 충돌하는 모양새를 보이면서도 수면 아래에서는 타협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점을 보여준다. 므누신 장관은 25일 <폭스 뉴스>에 출연해 “중국에게도 공정한 거래가 될 수 있는 합의를 위한 통로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양쪽의 견해 차는 폭이 넓다. 이달 초 류 부총리가 미국 쪽 초청으로 워싱턴을 방문해 핵심 인사들을 만났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류 부총리는 므누신 장관, 라이트하이저 대표, 개리 콘 당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등에게 금융 분야 규제 완화를 제안했지만, 미국 쪽으로부터 ‘정식 제안’을 요구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 류 부총리와 면담한 미국 재계 인사들은 중국의 금융 자유화 확대, 국유기업 보조금 축소, 자동차 관세 인하, 규제 투명성 제고, 미국 기업 진출 때 중국 기업과의 합작 의무 폐지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류 부총리는 즉답 없이 제안에 감사한다고만 말한 것으로 전재혔다.
다만 중국에선 이같은 국면이 오래가진 않을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중국 정부에 자문을 해주는 한 인사는 <파이낸셜 타임스>에, 중국은 앞으로 6개월 안에 연간 3750억달러 규모인 대미 무역흑자 규모를 줄이고 새로운 시장 개방 조처를 발표해 트럼프 행정부가 11월 중간선거 전에 승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대규모 무역 전쟁을 개시하는 것은 중국의 이익에 맞지 않는다”며 “중국은 미국과 무역보다 더 큰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쪽은 일단 4월8~11일 보아오포럼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중국이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이한 가운데,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8일 기자회견에서 올해 보아오포럼의 주제가 ‘개혁·개방’이 될 것이며 “개혁·개방의 성공 경험을 결산하고, 새 시대에 심화되는 개혁과 확대되는 개방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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