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훼방 기자’가 째려본 건 ‘가짜 기자’였다?
정부 관련 기자회견에 미리 짠 듯한 장황한 질문
중국 정부가 조종하는 가짜 해외 언론 의혹도
‘째려본 기자’ 중국 언론 현실 드러낸 상징으로 스타 돼
13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최된 ‘양회 부장통로’ 행사에서 장후이쥔 AMTV 기자(빨간 옷)가 질문을 하는 가운데, 옆에 선 다른 기자가 비웃거나 째려보는 듯한 표정을 지어 중국에서 화제가 됐다. CCTV 갈무리
중국에서 올해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 정치협상회의)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기자회견에서 장황한 질문을 한 기자와 이에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다른 기자가 화제가 되면서 중국의 언론 현실이 다시 한번 조명받고 있다.
13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부장 통로’ 행사에는 샤오야칭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국자감) 주임이 섰다. 각 부처 부장(장관급)들이 입장하는 통로에서 기자들이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행사가 시작되자마자 빨간 상의를 입은 한 기자가 마이크를 잡고 “감사합니다, 사회자님”이라며 입을 뗐다.
그런데 질문이 진행되면서 그 옆에 서있던 파란 상의를 입은 다른 기자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빨간 옷 기자를 흘겨보고, 기가막히다는 듯이 눈을 굴리며 결국엔 도저히 못 봐주겠다는 듯 비웃는 모습이 관영 <중앙텔레비전>(CCTV)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가 됐다. 익살스런 표정이 화제가 되면서 갈무리 동영상이 삽시간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퍼졌다. ‘난 네 말이 맘에 들지 않아’라는 글이 붙은 각종 ‘짤방’ 이모티콘이 만들어졌다.
오래지않아 이 ‘째려본’ 기자의 신분이 <제일재경>(CBN) 소속 량샹이 기자라는 게 밝혀졌다. 에스엔에스에서는 그의 상사가 량샹이에게 “회사의 향후 업무와 대중적 이미지에 엄중한 영향을 줬다. 당장 복귀해서 설명하라”고 지시하는 메신저 갈무리 화면도 돌아다녔다. 량샹이는 남이 질문하는데 이상한 표정지으며 훼방을 놓는 무례한 기자로 낙인이 찍힐 판이었다.
그러나 누리꾼들이 자세한 전후 상황을 따지기 시작하면서, 빨간 옷 기자의 질문 자체가 장황했다는 데로 초점이 옮겨가기 시작했다. 그는 ‘개혁개방 40주년’, ‘시진핑 주석의 일대일로’ 등 큰 주제를 잇따라 거론했지만, 결국 요약하자면 국유기업의 해외 자산을 효율적으로 관리감독하기 위해 국자감은 올해 어떤 새로운 조처를 준비했느냐는 뻔한 질문을 50초 동안 질문한 것이었다. 량샹이가 텔레비전 생중계 사실을 전하는 자신의 동료에게 “옆에 바보같은 X이 답하는 사람보다 더 길게 질문하잖아”라고 투덜대는 메신저 갈무리 화면도 공개됐다.
량샹이 <제일재경> 기자
뒤이어 빨간 옷 기자의 ‘신상털이’가 전개되면서 상황은 급반전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미국 전미 텔레비전 집행사장 장후이쥔’이라고 소개했는데, 이 매체의 정체를 의심하는 이들이 생겼다. ‘가짜 외국매체’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다. 나중에 보니 중국 관영 <중앙텔레비전>(CCTV)의 협력사로 이 방송사가 제작한 프로그램을 미국 서부에 방송하는 ‘AMTV’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실체가 있느냐는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이 기자의 신분도 불명확했다. 누리꾼들은 장후이쥔이 과거 여러 차례 <시시티브이>에 취재 기자로 등장한 모습을 찾아냈는데, 그 소속이 <중국 여행과 경제 텔레비전> 집행사장, <세계지식잡지> 기자 등 천차만별이었다. 에스엔에스에서 자기 자신을 ‘저명한 사회자’, ‘양회의 품격있는 언니’ 등 표현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도 놀림거리가 됐다. 장후이쥔과 량샹이의 양회 취재 기자증은 14일 모두 취소 조처된 것으로 알려졌다.
13일 ‘부장통로’ 사건이 중국에서 크게 관심을 끌면서 일러스트(오른쪽), 각종 이모티콘이 등장하는가 하면, 휴대전화 케이스(왼쪽) 등 관련 상품도 나오고 있다. 타오바오 갈무리 등
이번 사건은 열악한 중국 언론 환경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장후이쥔의 질문에서 보듯 중국의 각종 기자회견에서는 사전 조율 과정을 거치면서 당국의 입맛에 맞거나 미리 답변이 준비된 질문만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일부 주요 외신은 당국의 협조를 거부하면서 배제되기도 한다. 날카로운 돌발 질문이 나오더라도 중국 내 매체들은 ‘보도 지침’ 때문에 보도하지도 않는다. 한 외신기자는 “좌석까지 사전에 정해진 상태에서 진행되는 기자회견은 한 편의 연극을 방불케 한다”고 말했다.
정체가 모호한 ‘친중’ 외국매체의 등장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장후이쥔이 소속사로 소개한 ‘AMTV’는 누리집을 보면 “중국 정부와 중국 기업 브랜드가 해외에서 홍보할 때 가장 우수한 텔레비전 멀티미디어 종합 플랫폼”이라는 표현이 있다. 사실상 중국 관영매체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지난 몇해 동안 양회 등 정치행사에서 질문을 했던 외국매체들 중에서도 이같은 매체들이 많았다고 최근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osca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