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바이칼호 인근 러시아 도시를 편입하려 시도하고 있으니 정부가 중단시켜달라는 내용의 온라인 청원. 체인지 갈무리
시베리아에 있는 세계 최대 담수호 바이칼호 주변에서 중국 자본이 부동산을 대거 매입하자 이 지역 러시아 주민들이 ‘침략’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바이칼 호반의 작은 도시 리스트비얀카의 인근 주민 율리야 이바네츠는 최근 온라인 청원 사이트 ‘체인지’(change.org)에 올린 글에서 “주민들이 충격에 빠졌는데도 당국은 소극적이다. 만약 이 상태가 바뀌지 않으면 우리의 영토를 계속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중국 자본의 이 지역 부동산 투자를 막아달라고 호소하는 이 청원엔 리스트비얀카 인구(2000여명)의 30배 가까운 5만5천명이 참여했다.
주민들의 경계심과 위기감은 러시아인들의 민족주의를 강하게 자극하고 있다. 러시아 매체들은 칭기즈칸의 정벌을 연상시키며 ‘침략’이나 ‘정복’ 등의 표현을 쓰고 있다. 청원 참가자들은 중국이 종국에는 이 지역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 일이 낙후한 러시아 극동이 경제 성장을 거듭하는 중국에 취약해지고 있다는 러시아인들의 공포를 반영한다고 4일 보도했다.
중국 투자자들의 행태는 러시아 쪽의 반감을 더욱 고조시킨다. 리스트비얀카 지방정부 관계자는 “중국인들이 뭐든지 사들이는 데 대한 우려가 크다. 그들은 큰 호텔을 지으면서 외관을 다 바꿔버린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곳을 찾는 중국인 단체관광 가이드는 바이칼호를 고대 중국의 일부라고 소개한다. 일부 중국 여행사는 아예 바이칼호가 “한나라 때 ‘북해’로 불렸으며 오랫동안 중국의 영토였다”고 강조한다. 지역 주민들은 “중국에 되돌려달라는 것이냐”며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양국 정부가 전략적 필요 등에 의해 ‘사상 최고의 관계’를 자랑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어 중국의 도움이 절실하다. 중국은 서방의 견제 속에 취하고 나선 대외구상 ‘일대일로’에서 러시아를 비롯한 유라시아 나라들을 우선시한다.
그러나 중-러는 1858년 청나라와 러시아제국 사이의 불평등 조약인 아이훈조약과 1860년 베이징조약으로 중국에 불리한 국경이 획정된 역사가 있다. 비록 러시아가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2008년 ‘전면적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맺기까지 몇차례에 걸쳐 양보했지만, 극동지역 국경을 둘러싼 상호 반감은 완전히 제거되기 힘들다는 평가도 나온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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