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난징대학살 80주기를 맞아 중국 장쑤성 난징시 대학살 희생자 기념관에서 열린 국가추모일 행사에서 시민들이 묵념하고 있다. 난징/AP 연합뉴스
“높고 높은 금릉(난징의 옛 이름)이여, … 영원히 잊지 않으리.”
하얀색 상의와 짙은 남색 하의 차림에 가슴에는 검은 꽃을 단 청소년 80명이 낭랑한 목소리로 ‘평화선언’을 읽어 내려갔다. 13일 중국 장쑤성 난징의 대학살 피해자 기념관에서 열린 국가추모일 행사에 참가한 1만명은 숙연해졌다. 저마다 검은 옷을 입고 가슴에 하얀 꽃을 단 그들 중에는 시진핑 국가주석도 있었다. 오전 10시 난징 전역에 사이렌이 울려퍼지자 시민과 추모객들은 모두 묵념했다.
80년 전 국민당 정부의 수도였던 난징은 끔찍한 학살을 겪었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11월 상하이를 점령한 데 이어 12월13일 난징을 함락했다. 일본군은 6주 동안 대량 집단학살, 성폭행, 방화를 저질러, 이때 살해된 중국인이 3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중국 정부는 추산한다.
일본군은 포로뿐 아니라 민간인을 상대로 무차별 사격을 하고 총검술 훈련, 목 베기 시합, 생매장을 했다. 형언하기 힘든 수준의 참상의 각종 기록은 이날 행사가 열린 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이 시대를 산 중국의 문호 린위탕(임어당)은 소설 <폭풍 속의 나뭇잎>에 “신이 인간을 창조한 이래 지금까지 … 웃는 병사들이 갓난아이를 공중으로 던져 총검으로 떨어지는 아이를 능숙하게 꿰뚫고 그것을 스포츠라고 부르는 것을 처음 보았다”고 썼다.
일본에서는 공식적으로 학살 사건을 ‘난징 사건’이라고만 부른다. 1946년 열린 재판으로 당시 난징에 주둔하면서 학살에 직접 관여한 일본군 지휘관들이 사형에 처해졌다. 전반적 우경화 경향 속에 난징대학살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이들도 있다.
중국은 종전 뒤 승전국임을 주장하며 일본의 배상을 거부한 것과는 별개로, 일본의 전쟁 책임과 피해자 문제에 대한 규탄은 그치지 않고 있다. 량윈샹 베이징대 교수는 <아에프페>(AFP) 통신 인터뷰에서 “중국은 영해 분쟁 등 오늘날의 분쟁에서 일본에 대한 지렛대로 활용하기 위해 이같은 역사적 문제도 살려두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한편 중국 당국이 일본 전범들을 다룬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전범재판)을 기념하는 시설을 상하이에 건립하는 데에 나섰다고 관영 <차이나 데일리>가 13일 보도했다. 기념관에는 도쿄재판 관련 자료 등이 전시될 예정으로, 난징대학살 기념관과 더불어 ‘일본 침략 역사’의 대규모 기념시설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상하이자오퉁대 도쿄재판연구센터 주임인 청자오치 교수는 “상하이시 당국이 적절한 부지를 선정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osca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