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8일 청와대에서 수이쥔이 중국 CCTV 앵커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CCTV 제공
중국 관영 <중앙텔레비전>(CCTV)이 11일 저녁 10시30분(현지시각) 첫 방송을 시작으로 12일도 방중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 인터뷰를 내보내고 있는 가운데, 문 대통령의 애초 발언 내용을 다소 손질한 것으로 드러나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일 오후 이 매체의 대표적 인터뷰 진행자인 수이쥔이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사흘 뒤 시사 전문 인터뷰 프로그램 ‘환구시선’의 첫 방영을 1시간 반 가량 앞두고, 청와대는 담당 기자들에게 ‘보도 참고자료’를 배포했다. 프로그램의 성격과 문 대통령 인터뷰 전문을 담은 자료였다. 다음날 조간신문의 보도 편의를 위해 실제 방송 전에 낸 것으로, “방송 종료 이후 보도 가능”이라는 보도 자제 요청(엠바고)이 걸려있었다.
문제는 이 자료에 담긴 문 대통령의 발언과 실제 방송에서 나온 발언 및 프로그램 내용에 약간 차이가 있었던 점이다. 물론 분량 조절 등의 목적에 따른 인터뷰 편집은 드문 일이 아니며, 의도적 왜곡이 아닌 이상 언론사 고유의 권한으로 받아들여진다. 청와대 배포 자료에 “실제 방송 내용 확인 후 보도하시기 바랍니다”는 통상적인 유의사항이 붙은 것도 이런 맥락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시시티브이>의 편집은 문 대통령의 발언 일부가 삭제되고 내레이션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특정한 메시지가 강조되는 형태여서 눈길을 끈다.
① 중국, 한-중 ‘북핵 공조’ 경계하나
문 대통령 발언의 편집은 북핵문제와 한-중의 협력 가능성 언급에서 두드러졌다. 청와대 자료를 보면, 문 대통령은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나오게끔 하기 위해서 가장 긴요한 것은 한국과 중국 양국 간의 긴밀한 협력이라고 봅니다”라고 말했지만, 실제 방송에선 통째로 빠졌다. 북핵 문제의 근원을 북-미 갈등으로 보면서 북-미의 노력을 선결 과제로 보는 중국의 입장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또 문 대통령은 실제 방영분에서 “한-중 양국은 북한의 핵에 대해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그런 입장을 완벽하게 공유를 하고 있습니다”고 한 것으로 방송됐지만, 애초 발언은 “북한의 핵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북핵 불용 그리고 북한의 거듭되는 도발을 막기 위해서 강력한 제재와 압박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공유한다는 대목이 사이에 들어가 있었다. ‘제재와 압박’을 근본적 해결책으로 보지 않는 중국의 태도와는 사뭇 온도차가 있는 내용이다.
② ‘남북 평화 올림픽’도 삭제
문재인 정부가 강조해온 ‘남북 평화를 위한 평창동계올림픽’ 관련 메시지도 빠졌다. 문 대통령은 한-중이 평창동계올림픽과 베이징동계올림픽 등을 ‘평화와 공동번영’의 계기로 삼자고 말한 뒤, “하나만 더 말씀드린다면,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그렇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남북 간의 평화를 위해서도 아주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중국의 적극적인 지지와 협력을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했지만, 이 부분은 실제로 방송되진 않았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 여부마저 확정되지 않은 현실을 감안해, 북한에 대한 압박으로 풀이될 가능성을 경계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청와대에서 수이쥔이 중국 CCTV 앵커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CCTV 제공
③ 북한 ‘자극’ 피했나
문 대통령은 “북한과 같은 이런 작은 나라가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뒤처진 그런 나라가 오로지 핵 하나만 가지고 안보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한 것으로 청와대는 전했지만, 실제 방송 내용에선 “이런 작은 나라가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뒤처진 그런” 부분이 빠졌다. “지금 현재 상황은 북한이 도발을 계속하고 있는 대단히 엄중한 상황입니다”고 했던 대목에선 “북한이 도발을 계속하고 있는”이 빠졌다. 북한에 대한 자극적 표현이 삭제된 것으로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④ 시진핑 평창올림픽 참석 가능성 줄이나
문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의 평창동계올림픽 참석을 언급한 부분도 편집됐다. 원래는 “시진핑 주석께서도 지난번 베트남 다낭에서의 2차 정상회담 때 본인이 참석하지 못하게 될 경우에는 고위대표단을 보내겠다고 그렇게 약속을 하신 바 있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시진핑 주석께서 직접 참석하시는 것도 검토할 것이고, 또”라는 부분은 삭제됐다. 참석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지만, ‘직접 참석’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것이 눈에 띈다.
⑤ 한국 정치를 중국 중심으로 재구성
문 대통령의 인터뷰와는 별개로 이 프로그램이 중국 중심적 시각에서 문재인 정부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문제를 다룬 것도 눈길을 끈다. 이 프로그램은 별도의 내레이션에서 “한-중이 공동의 우려를 해결하고, 장애물을 넘어 양국 간 신뢰를 재건하는 것은 2017년 5월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 마음 속의 최우선 과제였다”라고 말했다. 수많은 국내 현안들을 감안하면 한국인으로선 의아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는 지난해 촛불시위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당시 중국 관영매체들이 “민의를 돌보지 않고 사드 배치를 강행했다”는 ‘혐의’를 주장하는 등 각종 한국 관련 소식을 국내 사정에 대한 고려 없이 중국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태도가 반복된 것으로 보여진다. 당시 중국 관영매체들은 “토양에 맞지 않은 서구식 민주주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체제경쟁적 보도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청와대에서 수이쥔이 중국 CCTV 앵커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CCTV 제공
⑥ 사드 문제 안 끝났다 “약속 지켜라”
방송은 또 “양국관계 해빙무드가 감지되고 있으나 사드 문제가 철저하게 해결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사드 문제는 단지 현 단계에서 처리되고, 중국이 한중관계 발전의 큰 방향을 고려해 내린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향후 양국관계 발전 방향은 한국이 관련된 약속을 철저히 지키고 이행함으로써 전략적 상호신뢰를 증진시킬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밝힌 ‘3불’(미국 글로벌엠디 가입, 한미일 군사동맹, 사드 추가 배치 등에 대한 부정)이 중국 입장에서는 ‘약속’이라는 것을 다시금 강조하면서 그 이행이 관건이라고 강조한 대목이다.
문 대통령이 원래 ‘3불’을 언급하며 “한국은 이미 사드에 관한 한국의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새로운 입장이 아닙니다. 과거부터 한국이 지켜왔던 입장을 말씀드린 것입니다”고 말했지만, 실제 방송에서는 “그것은 결코 새로운 입장이 아닙니다” 부분이 빠진 것도 의미가 있어보인다. 한국은 기존 입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하는 반면, 중국은 ‘3불’을 성과로 보면서 준수를 촉구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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