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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베이징 철거 현장] 쫓겨나는 주민들 “법치국가라니…엉터리 같은 말”

등록 2017-12-05 21:15수정 2017-12-05 21:37

화재로 ‘철거 바람’ 빌미 된 베이징 다싱구 신젠촌
전광석화 같은 철거 작전에 건물 무너지고 폐허만…
농민공들 삶의 터전…경비 삼엄하고 차단벽도 설치중
“철거 요원들 지독”·“공권력이 힘 과시하는 것”
5일 베이징 다싱구 신젠촌이 최근 단행된 철거로 폐허처럼 변해 있다.
5일 베이징 다싱구 신젠촌이 최근 단행된 철거로 폐허처럼 변해 있다.
5일 오전에 돌아본 베이징 다싱구 신젠촌은 폐허였다. 마을에 들어가려는데 멀쩡한 것이라고는 입구에 ‘신젠촌’이라고 적힌 기와지붕 대문뿐, 마을의 건물들은 대부분 철거된 상태였다. 당국이 ‘안전’을 이유로 베이징 근교 빈민촌을 대대적으로 철거하고 나선 가운데, 신젠촌은 지난달 18일 화재로 최초의 ‘빌미’를 제공한 바로 그곳이다.

무너진 벽돌과 시멘트벽, 철제 구조물과 각종 문짝 등은 철거 현장에 그대로 쌓여 있었다. 벽이 갈라진 곳엔 찢기지 않은 벽보가 펄럭였고, 쓰러진 상가 건물의 차양막 바닥의 유리 파편을 덮었다. 전혀 정리되지 않은 풍경은 철거 작업이 최근에 황망히 이뤄졌음을 방증했다. 주민들이 불가피하게 이곳을 떠난다는 보도가 최근까지 이어졌지만, 이날은 이사가는 사람도 볼 수 없었다. 그저 황량했다.

철거된 건물의 잔해가 쌓여있다.
철거된 건물의 잔해가 쌓여있다.
아직 떠나지 않고 사는 주민들을 드문드문 만날 수 있었다. 마을 남쪽에 미처 철거하지 않은 건물에 남은 이들이다. 자신들은 후커우(호적)상 등록지가 이곳이라고 했다. 한 주민은 “9월28일 철거를 할 수 있다는 통지가 붙었는데, 화재가 난 다음날 새벽부터 실제 철거에 나섰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69)은 “화재 이튿날부터 이웃들이 모두 쫓겨났다”고 말했다. 이곳으로 시집와서 내내 살았다는 그는 딸 부부 및 두 손자와 함께 산다고 했다. 그는 “난방비 등을 보상해준다고 했는데 아직 똑똑히 설명해주지 않아서 서명을 하지 않았다. 서명하고 떠난 사람들이 속았다고 하는 경우도 있어서 미심쩍다”고 말했다.

철거를 거부한 이들은 남아서 추위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중국은 당국 주도로 난방을 하는데, 이곳은 난방 실시를 허락받지 못했다. 길거리의 노인이 톱으로 나무를 썰고 있어 물어보니 땔감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했다. 집에서 물건을 수레에 싣고 밖으로 옮기던 60대 남성은 시종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이곳에서 잘 수 없으니 나가야지”라고 했다.

철거를 앞둔 상가 풍경이 을씨년스럽다.
철거를 앞둔 상가 풍경이 을씨년스럽다.
철거 대상으로 지목된 이들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애초부터 떠나는 것 외에 많지 않다. 특히 자영업자들은 더욱 그렇다. 상가 건물이 죄다 철거 대상이기 때문이다. 아직 무너지지 않은 건물엔 작은 슈퍼마켓과 세탁소, 식당, 목욕탕, 휴대전화 판매점 등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가게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유치원도 골목마다 있었다. 그러나 문은 닫혀 있었고 간판은 훼손됐다. 기자와 함께 거리를 바라보던 주민은 “공권력이 자기 역량을 과시한 것 아니겠나. 이 건물은 철거 대상이니 어떤 영업행위도 할 수 없다고 굳이 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난방도 전기도 끊긴데다, 물건을 사려 해도 살 수가 없는 신젠촌에선 일상이 불가능해 보였다.

주민들은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중국이 법치국가라는데 무슨 엉터리 같은 말인가. 일당독재 아래에선 하고 싶으면 해치우고 마는데…”라는 한탄이 나왔다. 철거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졌다고 한 주민은 “철거요원들은 지독했다. 베이징시 중심에서 20㎞ 떨어진 우리가 이런 꼴을 당하는데 다른 지역은 오죽하겠나”라고 말했다. 신젠촌 화재 뒤 철거 바람으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이들의 수가 10만명에 이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대부분은 농민공, 곧 다른 지역 출신 이주노동자들이다. 택배, 파출부 등 ‘저가’의 인건비에 기댄 산업도 타격을 받는다. 한 택시기사는 “시내가 덜 막힌다. 철거 탓인 듯하다”고 말했다.

신젠촌은 경계가 상당히 삼엄했다. 곳곳에 제복 차림의 보안요원들이 순찰을 돌았다. 낯선 차량이나 사람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경계 표지물을 세워놓은 곳도 많았다. 가장 바깥의 둘레에서는 건설 노동자들이 빨간 벽돌을 쌓아 벽을 세우고 있었다. 벽이 높아질수록 밖에선 철거 현장 모습이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한 외신기자는 “낡은 것은 나가라 하고 새로운 것만 들어오라 하는, 이것이 베이징의 민낯”이라고 말했다.

베이징/글·사진 김외현 특파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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