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시진핑 중국 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문재인 한국 대통령을 만난 사진을 11일, 12일 각각 보도했다. 인민일보 갈무리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2일치 2면에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에 참석한 시진핑 주석이 한국, 일본 등 각국 정상을 만나 정상회담을 했다고 보도했다. 눈에 띄는 것은 사진에 나온 시 주석의 표정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찍은 사진에서 그는 무표정했다. 전날 이 신문이 중-러 정상회담 소식을 전했을 때 실린 사진에서 시 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환하게 웃고있는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시 주석이 문 대통령 앞에서 시종 굳은 표정을 지었던 것 같지는 않다. 또다른 관영매체인 <중앙텔레비전>(CCTV) 관련보도를 보면, 시 주석이 말하면서 간간이 웃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같은 날 시 주석과 응우옌 쑤언 푹 총리의 만남 보도에서 시 주석이 줄곧 웃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많은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 지도자가 외국 정상을 만났다는 관영매체 보도에 나오는 지도자의 표정이 중국이 인식하는 양국관계의 현 주소를 상징하는 것으로 풀이한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을 만난 시 주석의 무표정한 사진은, 지난 10월31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관련 한-중 당국간 합의(10·31 합의)에도 불구하고 한-중 관계의 본격적 해빙을 점치기는 아직 어렵다는 뜻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2014년 11월 시 주석과 첫 정상회담을 한 이래 단 한번도 웃는 낯으로 보도되지 않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모습에서, 중-일 관계가 좀처럼 전기를 맞이하지 못하고 있음을 미뤄짐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제로 이날 시 주석이 문 대통령에게 한 발언에서도 중국의 불편한 속내가 드러났다. 특히 시 주석이 한-중이 상호 핵심이익 및 중대우려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사드 문제를 거론한 것은, 국내 여권에서 중국이 사드 문제를 더이상 핵심이익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오는데 대한 단호한 일침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중국이 이처럼 사드와 관련해 강경한 태도를 재차 확인한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어보인다. 우선, 사드 문제와 관련한 중국의 반대 입장에 어떤 변화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성격이 있어 보인다. 한국 쪽이 10·31 합의를 국내외에 강하게 홍보하면서 마치 사드 문제에서 중국이 양보하고 수용한 것처럼 비치고 있는데 대한 제동인 셈이다. 일각에서 중국의 외교 또는 경제압박이 실패한 것이라는 시각이 제기되는데 대한 불편한 기색도 엿보인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의 경제적 압박이 실패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며 “사드를 하나 배치하는 것을 감수하는 대신, 중국은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 틀 안에서 취할 수 있는 움직임의 범위에 대해 상당한 다짐을 받아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드 문제와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한국에 전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시 주석은 ‘관건적 시기'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한편, “역사의 시험을 감당할 수 있는 정책 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달 19차 당대회(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통해 선언한 ‘신형 국제관계'가 주변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되 주권 문제에서는 한치의 양보도 할 수 없다고 강조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곧, 중국의 종합적 국력이 신장하고 있는 이 시기에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에 강한 경고를 낸 셈이다. 앞서 8~1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서도,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대만 독립 불가)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을 기어코 받아낸 바 있다.
다분히 ‘국내용' 메시지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10·31 합의 이후 한국 매체들이 기류 완화를 점치면서 쏟아내는 언론보도 상당수가 중국에 번역돼 전달되는 가운데, 정부가 급작스러운 정책 변경은 없다는 것을 국내 관련업계 및 관계자들에게 알리는 신호라는 분석이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얼마 전 어떤 중국 기업이 3000명 규모로 포상성 단체관광을 한국으로 가기로 했다는 한국 언론 보도가 나왔는데, 해당 기업이 그런 계획이 없다고 밝힌 적이 있었다”며 “그 기사가 중국 인터넷에도 소개되면서 그 기업을 비난하는 댓글이 엄청나게 달리는 등 논란이 많았다”고 말했다. 10·31 합의가 양쪽 군사당국 간 소통을 제시하는 만큼, 적어도 군사당국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중국 당국이 공식 입장을 바꿀 근거가 없다는 시각도 있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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