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부인 펑리위안이 중국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를 8일 베이징 자금성에서 맞이해 나란히 서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취임 뒤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위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준비한 것은 ‘황제 의전’이었다. 명나라 영락제가 1403년 도읍을 정한 뒤 일부 시기를 제외하고는 줄곧 ‘중국’이라는 천하의 중심이었던 베이징에서 제국의 황궁 자금성을 통째로 비우고 트럼프 대통령을 맞이한 것이다.
8일 에어포스원을 타고 한국을 떠난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2시36분(현지시각) 베이징 서우두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엔 지난달 당대회에서 정치국원으로 격이 높아진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장예쑤이 외교부 부부장, 추이톈카이 주미 중국대사, 테리 브랜스태드 주중 미국대사 등이 마중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 일행이 탄 수십 대의 차량은 베이징 북동쪽의 공항에서 공항고속도로를 타고 단숨에 시내로 진입했다.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사각형 순환간선도로인 ‘얼(2)환’의 동쪽을 타고 내려와, 천안문을 중심으로 베이징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창안(장안)대가를 통해 자금성으로 향했다. 30㎞가 넘는 거리이지만 중국 당국이 도로를 통제해 자금성까지는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탄 검은색 리무진 오른쪽엔 성조기, 왼쪽엔 오성홍기(중국 국기)가 펄럭였다.
관람객을 받지 않아 텅 빈 자금성에서 트럼프 대통령 부부를 기다린 것은 시진핑 주석 부부였다. 네 사람은 자금성 보온루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보온루는 1915년 보물을 보관하려고 지은, 자금성에선 보기드문 서양식 석조건물이다. 두 정상 부부는 이어 자금성 주요 시설을 거닐었고 시 주석은 역사와 건축, 문화를 직접 설명했다. 자금성 중심인 태화전 앞에서 네 사람이 기념사진을 찍은 뒤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 부부 두 사람만의 기념촬영을 권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낭만적”이라고 말했다. 문화재 복원 작업을 관람하고 서화 표구 과정을 실제 체험하기도 했다.
두 정상 부부는 베이징 하늘이 붉게 물든 오후 5시30분께 자금성 내 왕실 공연시설인 창음각에서 경극 공연을 관람했다. 당 현종과 양귀비의 이야기인 <귀비취주>와 손오공이 나오는 <미후왕> 등이 무대에 올랐다. 공연 뒤 단원들과 악수와 기념 촬영을 한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을 보며 “우리는 훌륭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네 사람은 건복궁으로 자리를 옮겨 만찬을 함께 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자금성에서 만찬을 한 외국 정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이다. 중국 외교당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이 ‘국빈 방문’을 넘어서는 ‘국빈 방문 플러스(+)’가 될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특히 건복궁은 청나라 전성기를 이끈 건륭제(1735~1795 재위)가 즉위 전 머물다가 즉위 뒤에는 화원을 조성한 곳이다.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을 맞이하며 내세우는 ‘건륭제 코드’는 의미심장하다. 건륭제는 재위 중 열 차례 원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자부했고 중화제국 최대의 영역을 지배했다. 옥좌에서 물러나 태상황제로 있은 기간까지 합치면 중국에서 실질적 통치 기간이 가장 긴(64년) 황제이기도 하다. 1793년 조지 매카트니 백작이 영국 정부의 사절로 왔을 때 건륭제는 성대한 연회를 베풀어 손님을 환대했다. 그러나 매카트니가 베이징 상주, 개항, 감세 혜택 등을 요구하자, 83살의 건륭제는 “너희 나라의 물건이 조금도 필요하지 않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이방카의 딸인 손녀 애러벨라가 중국어로 노래를 부르고 시를 외우는 태블릿피시 동영상을 보여줬고, 이를 본 시 주석은 “중국어 실력이 늘어서 에이플러스(A+) 점수를 줘야겠다. 중국에서 이미 스타인 만큼 중국에 올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박3일 일정으로 방중한 트럼프 대통령은 첫날 자금성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이동했다. 9일에는 인민대회당에서 열리는 환영행사와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 등의 일정이 예정됐다. 10일에는 베이징 인근의 만리장성 무톈위 구간이 하루 종일 관람객을 받지 않기로 해, 트럼프 부부가 방문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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