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춘화 광둥성 서기(왼쪽)·천민얼 충칭시 서기. 베이징/AP 연합뉴스
현 지도자가 전임 지도자가 뽑아놓은 인재에게 권력을 물려주면서 이른바 ‘격대지정’으로 불려온 중국의 권력 승계 시스템에 변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후춘화 광둥성 서기와 천민얼 충칭시 서기가 최고지도부인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진입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가 소식통을 인용해 20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후 서기는 내년 봄 전국대표대회를 통해 부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지만 상무위 진입 가능성은 옅어지고 있으며, 천 서기는 현재의 중앙위원보다 한 단계 높지만 상무위원보다는 한 단계 낮은 정치국원이 되는 데 그칠 것이라고 전했다. <명보>도 이날 차기 상무위에 왕양·왕후닝·자오러지·한정·리잔수 등이 진입한다는 ‘후·천 배제 시나리오’를 보도했다.
차세대 주자들 가운데 가장 집권에 근접한 후 서기와 천 서기가 상무위에 진입하지 못한다는 것은 시 주석이 이번 당대회에서 후계 구도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 주석이 3차례 연임을 위해 초석을 닦는 것이란 관측이 나올 수밖에 없지만, 그보다는 시 주석이 권력 승계 제도 자체에 불만이 있기 때문이라고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분석했다. 후계자가 지명돼 집권자 곁에 있으면 안정감을 줄 수는 있지만 반대파의 공격 목표가 될 가능성도 높아지는데다, 강력하면 현 지도자와 경쟁하고 약하면 계파 다툼이 격해지는 경향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좀더 넓은 인재 풀을 만들고 성과에 따라 후계자를 결정하는 구상을 품은 것으로 보이지만, 이 경우 그의 권력은 과거 지도자들보다 강화되는 효과를 본다. 전임 후진타오 주석과 같은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으로 이미 정치국원에 올라 있고 경험이 풍부해 유리한 고지를 점한 뒤 서기보다는 한때 시 주석을 보좌한 경력을 중심으로 성장한 천 서기에게 시간과 기회를 주는 꼴이 되기도 한다.
이번 당대회를 통해 시 주석의 권력 강화는 여러 측면에서 선명해지고 있다. 시 주석을 제외한 정치국 상무위원 6명은 19일 모두 자신이 속한 지역의 대표단 토론에서 “시진핑 새 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당대회를 통해 당장(당헌)에 ‘시진핑 사상’이란 표현이 들어가면서 시 주석이 ‘마오쩌둥 사상’과 ‘덩샤오핑 이론’에 이어 이름이 명시된 사상·이론을 가진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시 주석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차이치 베이징시 서기는 같은 날 베이징 대표단 토론에서 “시진핑 총서기는 영명한 영수로서 손색이 없고, 새 시대 개혁·개방과 현대화 건설의 총설계사로도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라는 표현은 덩샤오핑에게 붙은 호칭으로, 시 주석을 덩샤오핑 반열에 올리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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