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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사드만 아니면 롯데는 선양에서 가장 환영받는 기업”

등록 2017-09-19 04:59수정 2017-09-19 08:59

[르포: 롯데의 중국 최대 투자 프로젝트 선양롯데월드]

3조원짜리 백화점·아파트·극장·호텔·놀이공원 사업
지난해 12월 공사 중단됐다가 여름 폭우에 보완 공사중
내년 말까지 전체 단지 완공 목표였으나 기약 없는 상황
먼저 연 백화점, 30~50% 세일에도 점원들만 눈에 띄어
현대·기아차 시장점유율, 2013년 6.8%→올해 3%대 추락
롯데가 3조원을 투자한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 선양롯데월드 공사 현장에서 16일 오후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롯데의 사드 부지 제공 뒤 지난해 12월 선양시 당국은 공사를 중단시켰으나, 올여름 폭우로 인근 공사장에서 사고가 일어나자 보완 공사를 요구했다.
롯데가 3조원을 투자한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 선양롯데월드 공사 현장에서 16일 오후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롯데의 사드 부지 제공 뒤 지난해 12월 선양시 당국은 공사를 중단시켰으나, 올여름 폭우로 인근 공사장에서 사고가 일어나자 보완 공사를 요구했다.
16일 찾아간 중국 랴오닝성 선양롯데월드 공사 현장에선 뚝딱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높이 솟은 크레인도 계속 돌아가며 각종 자재를 나르느라 바빴다. 이곳은 선양시 당국이 행정절차 미비를 문제삼으면서 지난해 12월1일부터 공사가 중단됐던 곳이다. 롯데가 성주골프장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부지로 제공한 뒤였다.

현장의 분주한 움직임이 재개된 것은 지난 8월 중순부터다. 7월에 내린 폭우로 인근 공사 현장에 사고가 일어나자 당국은 롯데 쪽에 현장 안전 조처 명목으로 보완공사를 요구했다. 안전 조처의 범위는 명확하지 않지만, 롯데는 나름의 판단으로 최선을 다해 조처를 하고 있다.

롯데가 총 3조원을 투자해 부지 16만㎡, 연면적 145만㎡에 백화점, 극장, 아파트, 놀이공원, 호텔, 사무실, 쇼핑몰 등을 짓는 이 사업은 롯데의 중국 내 최대 프로젝트다. 예정대로라면 내년 말까지 완공해야 하지만 이제는 불가능해졌다. 2014년 4월 준공된 백화점, 극장, 아파트를 제외한 나머지는 아직 형체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토요일인 이날 오후 선양롯데월드의 백화점은 거의 비어 있었다. 곳곳에서 50%, 30% 세일이 진행중이었지만 점원들이 두세 명씩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을 뿐 손님은 보기 힘들었다. 3층과 4층에 각각 자리한 여성복, 남성복 특판장을 10여분씩 지켜봤더니 각각 1명, 3명이 지나가면서도 물건은 구경도 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1층의 가판대에만 사람들이 40명가량 모여 있었는데, 진열된 물건은 2위안(344원)짜리 커피잔을 비롯해 ‘1000원숍’처럼 나열된 5위안, 10위안, 15위안짜리 잡화, 그리고 과자뿐이었다. 백화점 옆 아파트는 4개 동(1806가구) 가운데 2개 동(834가구)이 입주를 시작했지만 분양률이 60%대다. 올해 하반기 출시될 나머지 물량의 계약 상황도 나쁘면 분양률은 더 떨어질 수 있다.

16일 오후 3시께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 선양롯데월드 백화점의 여성복 코너. 토요일인데도 손님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16일 오후 3시께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 선양롯데월드 백화점의 여성복 코너. 토요일인데도 손님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상황은 막막하지만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롯데의 중국 사업이 바닥을 쳤기에 이제는 회복 국면이 올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롯데 자본 유치에 발벗고 나섰던 선양시 당국이 중단된 공사를 도심에 오래 방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 롯데월드 부지는 군부대 등이 있던 자리로, 선양 중심지 가운데 하나인 북역(기차역)과 지하철역에 바로 연결되는 금싸라기 땅이다. 선양롯데월드 사업이 결정되던 2008년 4월 당시, 외자 유치에 열중하던 선양시 당국의 기대와 한 자녀 가정이 많아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돈을 쓰는 중국의 놀이공원 사업에서 기회를 본 롯데의 결단이 의기투합했다. 선양시 당국은 반발을 무릅쓰고 군부대까지 옮겼다. 선양의 랴오닝사회과학원 소속 뤼차오 연구원은 “다 지어지면 동북지방 최대의 놀이공원이 된다고 해서 모두들 기대했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선양 사람들의 생각이 이제는 달라졌다는 점이다. 뤼 연구원은 “사드 문제만 아니면 롯데는 선양에서 가장 환영받는 외자기업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미지가 너무 나빠져서 시민들이 별로 이용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롯데 경영진은 왜 이럴 거라 예상하지 못했나”라고 물었다. 현지 중국 기업인은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지나도 늦은 게 아니라는 중국 격언은 이럴 때 쓰는 말”이라며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중국인들은 상한 감정을 풀지 않는다. 사드 배치는 믿었던 친구한테 배신당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니, 중국에서는 롯데가 마트에 이어 중국 사업 전체를 철수할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일단 롯데 쪽은 “마트 이외 사업장 매각을 추진하고 있진 않다”는 공식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일각에선 롯데의 중국 사업은 신동빈 회장이 큰 관심을 쏟은 프로젝트인 만큼 완전 철수는 힘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롯데마트가 사라지면 마트 없이 백화점만으로 중국 유통망을 운영하기 어려워지고, 제과 및 음료의 판매 플랫폼이 이전보다 크게 줄어들면서 롯데 사업의 기반 전체가 흔들릴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롯데가 마트 매각 사유로 제시한 ‘지속적인 경제적 피해’는 중국에 진출한 모든 롯데 계열사들이 골고루 겪는 일이다. 선양에 있던 부동산 담당 임원이 지난 주말부터 한달가량 서울과 홍콩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선양롯데월드도 결국 매각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롯데그룹은 이에 대해 “새 투자처를 찾는 활동”이라고 설명했다.

선양롯데월드 백화점 내부. 토요일 오후인데도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선양롯데월드 백화점 내부. 토요일 오후인데도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사드 사태’가 날개 없는 추락의 결정타가 되기 이전부터 중국에서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계속 하락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드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경쟁력 회복을 위한 해법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롯데마트는 2008년 네덜란드계 할인점 마크로 매장 8곳을 인수하며 중국 마트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만년 적자였다. 외국 기업에 배타적인 분위기와 정부 규제 등이 만만찮은 중국 시장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중국 등 해외 3개국의 롯데마트 매출은 2014년부터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영업손실이 2013년 830억원, 2014년 1410억원, 2015년 1480억원, 지난해 1240억원 등 4년 동안 4960억원에 이르렀다. ‘사드 보복’은 이런 상황에서 설상가상의 치명타가 됐다.

사드 배치 이후 중국에서 고전하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히는 베이징현대 합작법인의 상황도 비슷하다.

베이징현대 합작법인 공장은 대금 지급 중단에 따른 부품 공급 중단으로 며칠 동안 라인이 멈추는 상황까지 간 끝에 최근 겨우 조업을 재개했다. 사드 사태가 직격탄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현대·기아차가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제때에 신차 출시를 하지 못하는 등 시장 흐름을 놓친 실책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현대차는 중국 시장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선호도가 높은 스포츠실용차(SUV) 라인업 확대에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현대차 내부에서도 중국 현지 적합형 차종 개발과 신차 출시가 늦어지면서 타이밍을 빼앗긴 것을 위기의 주된 원인들 중 하나로 보고 있다.

호시절엔 수면 아래에 잠겨 있던 문제들도 분출하고 있다. 현대차와 합작한 중국 베이징자동차는 현대차와 ‘동반 진출’한 한국계 부품업체들이 부품 가격을 높이 책정해 너무 많은 수익을 가져간다는 불만을 제기했지만, 판매가 잘되는 상황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성장세가 푹 꺾이면서 베이징자동차는 협력업체에 대한 부품 대금 지급을 일시 중단하는 등 갈등이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현대·기아차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2013년 6.8%를 정점으로 해마다 떨어져 지난해 5.1%로 낮아졌다. 올해 들어선 3%대로 뚝 떨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2012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때 일본 차 업계도 중국에서 큰 타격을 입었지만 원체 품질 및 가격 경쟁력이 있으니 금세 회복했다. 하지만 베이징현대는 사드 이전부터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자동차학)는 “사드는 정치적인 문제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지금부터라도 중국 시장의 변화에 맞춰 차종 개발과 신차 투입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선양 베이징/글·사진 김외현 특파원, 홍대선 김소연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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