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북-중 접경지역인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압록강대교 위로 화물을 가득 실은 차량들이 북한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단둥/김외현 특파원
지난달 31일 중국 랴오닝성의 북-중 접경 도시 단둥시 재래시장엔 아직 금어기 중인데도 수산물이 전혀 부족해 보이지 않았다. 상인에게 조개류 값을 묻자, “얼마 전 북한 어선 1척이 뒤집혀서 좀 올랐다”고 말했다. 북한 어선 사고 소식은 따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북한산이라는 뜻이었다. 지난달 5일 통과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새 대북 제재 결의(2371호)는 모든 회원국의 북한산 수산물 수입을 금지시켰다. 중국은 열흘 뒤 국내조처를 내려 이를 이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5~8월 금어기의 중국 내 공급 공백을 북한산이 메우고 있는 셈이다.
바다에서는 중국 당국의 단속과 감시가 이뤄지지만, 수산업자들은 감시선박이 철수하는 밤 10시 이후에 북한 쪽에서 해산물을 조달해온다고 했다.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밀수에 해당한다. 업자들은 이미 제재 이전에 북한에 대금을 치른 물량이라고 주장한다. 북한 당국에 갖다바친 뇌물과 선장·선원에게 선지급한 1년치 급여 등 회수되지 않는 비용을 생각하면 손해가 막심하다는 게 이들의 이야기다.
그동안 압록강 하류의 단둥 수산업자들은 북한에 양식 및 조업을 위탁하는 경우가 많았다. 단둥의 한 소식통은 “북한 쪽 바닷물이 중국 쪽보다 깨끗한데다 인건비와 땅값이 싸기 때문에, 중국 자본으로 북한 땅에 냉동창고를 짓거나 배와 사람을 구해서 조개류와 꽃게 등의 양식 및 조업을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며 “하지만 중국 스스로의 어획량에 견주면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실제 중국 수산업계가 북한산 밀수에 크게 의존할 가능성은 낮다. 중국 어민들은 무분별한 남획으로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문제시될 정도의 공급망을 갖췄다. 당국이 어자원 보호를 위해 설정한 올해 여름철 금어기가 9월1일 정오 풀리자, 중국 어민들은 직접 서해 조업에 나선 상태다.
북한산 수산물의 중국 판로는 당분간 막힐 수밖에 없어보인다. 동해 수산물이 중국으로 유입되는 창구인 지린성 훈춘의 북한산 해산물 전용 통관장인 취안허 세관은 지난달 15일부터 수입을 전면 금지시켰다. 훈춘의 수산업체들이 잇따라 문을 닫으면서, 상당한 규모의 실직 사태도 빚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자본으로 지어진 냉동창고, 가공설비 등과 그 안에 보관됐던 해산물 등을 감안하면 중국인들의 재산 피해가 불가피하다.
1일 지린성 창춘에서 개막한 제11회 동북아박람회의 북한관에서는 한 업체가 말린 해삼을 내놨다가 홍역을 치렀다. 일본 취재진이 현장 직원에게 해산물은 제재 대상이라는 것을 아느냐고 묻자, “파는 것 아니다. 중국의 친척한테 줄 것”이라고 답하다가, 그럼에도 촬영이 이어지자 끝내 물건을 어디론가 치워버렸다. 지난해 북한은 중국에 약 1억9천만달러어치의 해산물을 수출했다.
중국 지린성 창춘에서 1일 개막한 제11회 동북아박람회에는 30여곳의 북한 업체들도 참여했다. 창춘/김외현 특파원
새 안보리 제재 결의가 요구하는 북한 기업 합자 제한 및 북한 인력 고용 제한 또한 북-중 접경 지역을 고뇌에 빠뜨리고 있다. 북-중 경제협력의 대표적인 모델로 그동안 활발하게 진행돼온 중국 자본과 북한 노동력의 결합이 불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단둥의 한 한국 기업인은 “단둥에 나와있는 북쪽 사람들 규모가 1만8000명에서 2만명에 이른다”며 “이 가운데 상당수가 의류업체에 파견된 노동자들인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연변(옌볜)의 한 조선족 기업인도 외신에 “저렴한 비용으로 조선(북) 인력을 고용할 수 있다는 입지 조건이 연변의 중요한 매력이다. 그 덕에 몇천명이 나와있는 게 가능했는데 이젠 앞날이 불투명해졌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새 제재에 따른 북한산 상품 수입 금지와 북한 기업 합자·합영 금지 등에 대해선 국내 조처를 만들어 발표했지만, 인력 고용과 관련해서는 아직 아무런 발표를 내놓지 않고 있어 불투명한 부분이 많다. 결의 조항은 “회원국이 북한 국민에게 발급하는 취업허가증 총수는 결의 통과 시점의 수량을 초과할 수 없다”고 돼있지만, 기존 체류 노동자들의 비자 갱신을 허용하지 않는 사례가 거듭되다보면 실제로는 전체 수가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연변에서는 개성공단처럼 당일 출퇴근하는 식의 북한 노동자 고용도 검토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백지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북한 기업 관계자는 “지금까지도 중국이 워낙에 취업을 잘 시켜주지 않았는데, 앞으로 제재 때문에 뭐가 되겠는가”라고 말했다. 중국 내 북한 식당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에는 북한 쪽이 독자적으로 자본을 대어 직접 경영하는 형태보다는, 중국 자본에 기반해 종업원만, 더러는 주방장까지만 북한에서 고용해오는 형태가 늘고있다.
중국에서 의류 원부자재를 모두 보내 북한 내에서 만들도록 하는 임가공 사업도 조건이 악화하고 있다. 복수의 단둥 기업인들은 중국 당국이 지난달 초부터 임가공 제품의 생산지를 ‘북한산’(Made in DPRK)으로 표기하도록 규정을 강화했다고 전했다. 한 조선족 기업인은 “8월초부터 정부 지시가 있었다면서 ‘중국산’(Made in China)이라고 표기할 수가 없게 됐다”고 말했다. 북한의 저렴한 비용과 노동자들의 높은 생산성 덕에 이같은 임가공 무역이 광범하게 진행돼왔는데 이젠 불가능해진 셈이다. 한 한국 기업인은 “그동안 한국이나 미국이 알면서도 묵인하던 부분이었는데, 중국이 조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산으로 표기하면 수출할 수 없어지는 곳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완공된 신압록강대교는 단둥과 신의주를 잇는 새로운 다리지만 북한 쪽 도로 연결이 이뤄지지 않아 개통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8월30일 촬영됐다. 단둥/김외현 특파원
당분간 중국의 대북 투자는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미 압록강 하류 북한 섬인 황금평에서 추진되던 북-중 경제협력은 2013년 말 이를 주도한 장성택 당 행정부장 숙청 뒤 답보 상태다. 2014년 완공된 신압록강대교는 북한 쪽 연결 도로가 건설되지 않아 개통을 못하고 있다. 신압록강대교 중국쪽에 지어진 신도시에는 시정부 청사가 이전해오고, 체육관, 세관 등 새 건물이 지어졌지만,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북한과의 순조로운 연결이 이뤄지지 않으니 텅텅 비어있는 ‘유령 도시’ 같은 느낌마저 든다. 한 현지 소식통은 “단둥 신도시에 전자, 의류 등 친환경 경공업이 많이 입주했고, 러시아·유럽 무역 수요가 늘면서 당장은 단둥 자체 동력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북-중 접경지대 사람들 일각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제재 국면이 유명무실화 할 수 있다거나, 북한이 ‘핵 외교’를 통해 개혁·개방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른 한편에서는, 한반도 유사시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지역이 될 것이란 불안감도 감돈다. 남한 사람, 북한 사람, 중국 조선족, 북한 화교 등 서로다른 ‘코리안’들이 저마다 자신에게 어떤 미래가 가장 바람직할지를 놓고 조용히 주판알을 튕기기도 한다.
단둥의 ‘코리아 타운’ 고려거리의 북한 화교 출신 주방장은 “우리집 손님은 주로 조선(북) 사람들이 많은데, 제재가 강화된다는 이야기가 여러 차례 나와도 숫자가 줄거나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 식당의 주인은 남한 사람이라고 했다. 압록강변 한 북한 식당에서 식사를 한 뒤 ‘남쪽에서 왔다’고 밝히자, 종업원은 동행한 이를 보며 “중국 사람하고 같이 와서 이번엔 괜찮지만, 다음부터는 오지 마십시오”라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단둥과 신의주를 잇는 기존 압록강대교(조중우의교)는 중국에서 북한을 향하는 트럭이 가득했다. 건국절(9월9일)을 염두에 둔 물량 조달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태양절(김일성 주석 생일, 4월15일), 광명성절(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 2월16일) 등 북한의 국경일이 다가오면 늘 있는 현상이라고 한다. 교행이 되지 않는 한 차선짜리 다리 위에서, 트럭들은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가고 있었다.
단둥·창춘/글·사진 김외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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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 하류 북한 섬인 황금평에서 추진되던 북-중 경제협력은 2013년 말 장성택 당 행정부장의 숙청 뒤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사진은 8월30일에 촬영됐다. 단둥/김외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