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국이 해외 인수·합병에 열중했던 중국 민간기업들에 대한 대대적 단속을 계속하고 있다. 외환보유고 감소가 표면적 이유이지만, 시진핑 국가주석의 정치적 권력 강화 맥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6월 덩샤오핑의 손녀사위인 우샤오후이 안방보험 회장이 갑자기 당국에 연행되면서 본격적으로 막을 올린 이른바 ‘회색 코뿔소’ 단속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안방보험은 자산 매각 압박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최근까지 미국 극장체인과 할리우드 영화사 등을 인수했던 다롄완다는 핵심 사업을 매각하기로 했고, 리조트체인 클럽메드 등을 인수했던 푸싱그룹도 대규모 자산을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인수·합병의 총아였던 하이난항공(HNA·하이항)그룹도 반부패 조사설, 금융사 자금차단설 등에 휩싸여있다.
‘회색 코뿔소’란 7월 중순 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들고 나온 표현인데, 존재감이 크지만 실질적 위협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위험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존재라는 의미다. 당국의 ‘회색 코뿔소 사냥'은 중국 경제의 위험 요소에 대한 선제 대응 방침으로 풀이됐다. 한때 중국 자본의 해외 진출과 국력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주요 기업들에 이제는 금융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주범이란 딱지가 붙은 셈이다.
중국 지도부가 이렇게까지 나선 배경에는 지난해 말부터 두드러진 외환보유고 급감이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9일 보도했다. 올해 1월 중국의 외환보유고가 3조달러 이하로 떨어졌다는 소식은 당국의 걸음을 바쁘게 만들었다. 18개월 동안 외국 기업 인수·합병에 1조달러가 빠져나간 것이 주요 요인으로 지목됐다. 중국공산당은 외환보유고를 국력의 상징인 동시에 세계 경제 충격으로부터 중국 경제를 보호할 중요한 보호막으로 여긴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코뿔소 사냥’은 올 가을 당대회와 지도부 개편을 앞둔 상황에서 시 주석의 정치적 ‘무기’가 되고 있다. 민간 자본에 대한 당의 통제를 강화하는 동시에, 그들과 줄이 닿은 당내 경쟁 세력을 약화시키면서 차기 권력구도에 대한 시 주석의 영향력을 확대시킨 것이다. 중국 금융 분야 전문가인 프레이저 하위는 “중국에서 민간 자본은 당의 이익에 부합할 때만 환영받는다”며 “모든 중국인에게 걸려있는 목줄을 올 여름 세차게 한번 끌어당긴 셈”이라고 말했다.
연행돼 조사를 받고 있는 우샤오후이 안방그룹 회장
다만 칼날은 한쪽만을 향하지 않았다. 시 주석의 측근인 왕치산 중앙기율검사위 서기는 미국으로 도피한 궈원구이 정취안홀딩스 회장한테 매서운 공격을 받고 있다. 그는 왕 서기의 가족이 하이난항공의 숨겨진 지분을 이용해 이익을 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방보험은 연행된 우 회장이 덩샤오핑의 사위라는 것이 오히려 부각돼 투자자와 고객들의 신뢰를 받고 있다.
당국의 ‘사냥’ 여파로 중국 기업들로부터 투자를 받으려던 외국 기업들은 혼란에 빠졌다. 중국 당국의 예측 불가성, 시장경제를 내세웠지만 민간기업이 여전히 국가에 의해 좌우되는 현실에 대한 불안감도 커졌다.
안방그룹이 인수한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현재로선 민간기업이 ‘항복'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월트디즈니를 추월하겠다며 해외 엔터테인먼트 기업에 눈독을 들이던 다롄완다의 왕젠린 회장은 경제지 <차이신> 인터뷰에서 “주요 투자는 중국 내에서 할 것”이라고 말했다. 클럽메드와 ‘태양의 서커스’ 등을 인수하던 푸싱그룹 궈광창 회장도 지난달 공개서한에서 “해외 투자에 대해 이뤄진 최근의 조사는 필요한 것이고 시의적절하므로 비이성적 투자를 제거했다”고 밝혔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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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다롄완다그룹이 인수한 미국 극장체인 AMC의 캘리포니아 아카디아 소재 영화관에서 2일 관객들이 영화표를 예매하고 있다. 아카디아/AFP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