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기사 커제 9단이 23일 중국 저장성 우전에서 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와 대결을 펼치던 중 고민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구글 제공. 연합뉴스
“우리는 인간입니다. 실수를 하고,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죠.”
중국 저장성 우전에서 23일 열린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커제 9단의 1차 대국은 로봇을 상대로 한 인류의 한계에 대한 숙제를 다시 한번 자각시켰다. 이날 유튜브 등으로 생중계된 대국의 해설을 맡은 화이강 중국바둑협회 부주석은 “커제는 우수한 선수지만 보아하니 오늘 쉽지 않네요”라는 말을 반복했다. 오전 10시30분(현지시각)부터 시작한 대국은 3시가 되지 않아 끝났다. 커제는 결국 289수 만에 흑으로 1집 반을 졌다. ‘세계 최강’이던 커제가 인공지능에 승리를 내주면서 ‘인간계 최강’으로 내려앉은 셈이다.
이날 커제의 고민은 길었다. 각각 3시간씩의 제한시간이 부여됐지만, 첫돌을 둔 지 3시간 반이 지난 오후 2시 커제의 제한시간은 30분, 알파고에겐 2시간이나 남았다. 대국이 끝날 무렵 커제와 알파고는 각각 13분17초와 1시간29분6초가 남아있었다. 커제의 판단이 빠르다는 그동안의 평가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속도뿐만이 아니었다. 커제는 초반에 고유의 스타일을 잠시 접어두고 극단적 실리를 추구하고 나섰음에도, 내내 열세를 면치 못했다. 대국에 앞서 그는 중국 언론 인터뷰에서 “알파고의 수는 신선의 수”라며 역부족을 시인한 바 있다.
이날을 포함해 25일, 27일 세차례 대국을 하게 될 알파고는, 지난해 3월 이세돌 9단과 맞붙었던 때보다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알려졌다. 구글 자회사로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 최고경영자는 올초 강연에서 “인간의 기보를 참조하지 않고 스스로 학습하는 두번째 버전(2.0)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인간의 데이터 입력 없이 스스로 공부하는 ‘머신러닝’ 기술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이세돌 9단은 5차례 대국에서 1승이나마 거둔 반면, 커제 9단은 전패할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이 많다. 바둑의 복잡성 탓에 인공지능이 쉬이 인간을 넘보지 못할 거란 이야기는 이제 옛말이 됐다.
알파고의 발전은 인공지능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중국 정보기술 기업들에도 자극이 될 전망이다. 중국의 대표적 검색엔진 기업인 바이두는 지난 3월 국가발전개혁위원회와 더불어 ‘인공지능 랩(실험실)’을 만들기도 했다.
한편, 중국 당국이 2010년 이후 취하고 있는 구글 유튜브에 대한 차단 조처를 풀지 않아, 중국 내에서 이날 대국은 제한적으로 시청할 수밖에 없었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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