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 포럼’에 참석한 각국 지도자들이 14일 개막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베이징/신화 연합뉴스
중국 베이징에서 14일 개막한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 포럼’(BRF)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래 본격적인 첫 외교 무대 역할을 톡톡히 하는 분위기다. 개막 나흘 전까지 한국은 초청장도 받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 행사를 계기로 남-북, 한-중 간 첫 고위급 접촉이 성사됐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 대표단장’ 자격으로 참석한 박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오전 개막식에 앞서 북한 대표단장인 김영재 대외경제상을 만났다. 박 의원은 “먼저 와 있던 김 경제상을 만나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며, 우선 이날 오전 북한의 미사일 발사 문제를 비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박 의원은 “여러 가지 현안에 대해 꽤 시간을 두고 대화했다”며 “북쪽이 남북 대화에 기대감을 갖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 경제상이 실제로 어떤 언급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박 의원의 대북 접촉은 2016년 1월 4차 북한 핵실험 이후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 전면 중단과 북 확성기 방송 재개 등 강경책으로 대응하면서 남북관계가 경색 일변도를 달려온 가운데 이뤄진 것이어서 주목된다. 다만 이같은 접촉이 본격적인 대화로 이어질 것을 예단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대표단 핵심 관계자는 전날 <한겨레> 기자를 만나 “대화 재개는 제약이 있다. 전 세계가 제재 국면인데 갑작스레 대화 모드로 전환하면 ‘너희들끼리만 대화하냐’는 비판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핵·미사일 프로그램의 동결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관은 중국 외교부에 공문을 보내 이번 포럼에 북한 대표단을 초청한 것이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비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박 의원이 중국 쪽 고위 관계자들을 잇따라 접촉한 것도 성과로 꼽힌다. 박 의원은 14일 저녁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주최 만찬에서 중국 주요 인사들을 만나 환담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15일 저녁에는 중국 외교의 사령탑인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과의 공식 면담도 잡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낮에는 전임자인 탕자쉬안 전 국무위원과 오찬도 예정돼 있다. 외교 분야 주요 인사들과의 접촉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관한 의견 교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이번 행사 참석은 개막을 사흘 앞둔 11일까지만 해도 아무런 진전이 없어 사실상 불가능해보였지만, 이날 시 주석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국 대표단 파견을 요청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중국 쪽이 적극적으로 예우를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14일 행사 때 좌석 배치를 보면, 박 의원의 자리는 국가원수급 인사들 바로 다음 줄로 장관급보다는 앞쪽이었다”며 “자리 배치나 주요 인사 면담 등에서 볼 때, 막판에 참석이 확정된 것치고는 중국 쪽이 배려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포럼 참석을 계기로 사드 배치 문제 탓에 단절되다시피 한 양국 외교 채널 복원의 첫 단추를 뀄다는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한국 대표단 관계자는 “이번 대표단이 1차적으로 물꼬를 트고, 대통령 취임 특사가 다음에 와서 물꼬를 넓힌 뒤 세부적 논의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취임 특사로는 이해찬 전 총리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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