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8월24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한국의 이상옥 외무장관(왼쪽)과 `한중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악수하는 첸치천 당시 중국 외교부장. 연합뉴스
1992년 한-중 수교 당시 중국 외교부장으로 장쩌민 시대 외교를 총괄했던 첸치천(89) 전 중국 부총리가 9일 지병으로 사망했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첸 전 부총리는 한-중 수교 때 외교부장으로 이상옥 당시 한국 외무장관과 수교 서명을 했다. 앞서 한-중 수교를 설명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했으나 김일성 주석한테 냉대를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총리 때인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 축하사절로 참석한 바 있다.
1928년 상하이에서 태어난 천 부총리는 42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했고, 45년부터 <대공보>에서 일하면서 지하활동을 했다. 장쩌민, 리펑 등과 함께 초기 ‘소련 유학파’로 꼽히는 그는 1954년부터 1년 동안 모스크바에서 유학했다. 1955년 주소련대사관 이등서기관으로 외교관의 삶을 시작한 그는 서아프리카의 기니 대사로 오랫동안 근무했다. 1966년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하방됐다가 72년 복권돼 다시 외교관 생활을 이어갔다.
1982년 외교부 부부장으로 승진했고 87년 중-소 국경협상에서 중국 쪽 대표단장을 맡았다. 1988년 외교부장이 돼 91년 국경협정에 서명한 것도 그다. 1988~98년은 외교부장으로, 1993~2003년은 국무원 부총리로 있으면서 장쩌민 전 주석이 총서기(1989~2002년)로 있는 동안 실질적으로 외교 사령탑을 맡았다. 첸 전 부총리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외교장관 회담에 참석한 첫 중국 외교관으로 기록됐고, 중-아세안 협력의 기반을 닦았다는 평가를 얻는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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