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중국

중국에선 이혼해도 자동 연대보증…여성 피해 늘어

등록 2017-01-28 16:37수정 2017-01-28 16:57

피해자 80% 이상이 고학력·직장 여성
2004년 도입된 ‘혼인법 해석’ 24조
채권자 보호취지 퇴색…폐지운동 일어
중국 혼인법에 따른 채무 연대보증으로 고초를 겪는 ‘24조 피해자 모임’ 회원들이 ‘24조 폐지’ 등을 요구하는 글귀를 들고 있다. <쑤저우신문망> 갈무리
중국 혼인법에 따른 채무 연대보증으로 고초를 겪는 ‘24조 피해자 모임’ 회원들이 ‘24조 폐지’ 등을 요구하는 글귀를 들고 있다. <쑤저우신문망> 갈무리
이혼 뒤 ‘싱글맘’으로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하는 탕팅(35)씨는 전남편의 빚 43만위안(약 7300만원)을 갚으라는 소송을 당해 지난 16일 2차 재판에 출석했습니다. 원고인 채권자는 전남편이 손으로 쓴 차용증을 보이며, 결혼 기간에 작성된 것이므로 관련 법률에 따라 탕팅이 빚을 갚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탕팅은 채무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증거자료를 제출합니다. 그러면서 “전남편은 ‘결혼 정보 사이트’에서 알게 됐고, 가정폭력으로 3년 반 결혼생활 끝에 지난해 5월 협의이혼했다”고 밝혔습니다. “악몽 같던 결혼이 이제 막 끝났는데, 또다시 악몽이 시작될 줄 알았나요.”

탕팅은 이혼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빚쟁이들의 독촉 전화를 받게 됐다고 합니다. 하나같이 하는 얘기가, 전남편이 얼마를 빚졌는데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겁니다. 자신이 알지 못했던 빚이 너무 많았다는 게 탕팅의 이야기입니다. 전남편은 연락이 닿지 않는데, 어떤 이는 전남편이 500만위안(약 8억5천만원)을 빌려갔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채권자 2명이 소송을 냈고, 이날 재판은 그중 하나였습니다.

이날 방청석에는 여성 3명이 전부였습니다. 탕팅과 함께 ‘24조 피해자 모임’이라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모임에 속한 이들입니다. 여기서 24조는 채무 연대보증을 명시하는 중국 ‘혼인법 해석2’ 24조, “채권자가 혼인관계가 존속되는 부부 어느 한 사람의 개인 명의로 진 채무에 권리를 주장한다면, 응당 부부 공동채무로 보아 처리한다”를 가리킵니다. 2004년 이 조항이 처음 도입·실시될 때만 해도 이혼을 통해 채무를 회피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리밍순 혼인가정법학연구회 부회장은 <중국신문주간> 인터뷰에서 “21세기 이후 부부가 악의적으로 채무를 피하기 위해 이혼을 이용하는 현상이 생겨나, 거액의 빚을 진 뒤 재산을 부부 중 다른 1명에게 몰아놓고 이혼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최대한 채권자를 보호하려던 조처였지만, 이제는 거꾸로 점점 선의의 피해자가 늘어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남편의 외도, 가정폭력, 도박 등으로 가정이 파탄나고 결국 부부는 이혼을 합니다. 그러나 이혼 뒤 부인은 전남편의 채권자로부터 연락을 받고, 알지도 못하는 빚을 갚으라는 독촉을 받습니다. 전남편은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피해자 모임은 부부 공동채무 관련 재판이 2014년, 2015년 7만여건 수준에서 지난해 12만여건으로 폭증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사건 가운데 최소 1만5000건에서 피고인들은 전남편과 전부인의 채무를 몰랐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체 조사에서 피해자의 87.1%가 여성이었고, 80.6%가 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이었으며, 86.7%가 안정적 수입이 있는 직장에 재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중국 법조계에서도 ‘24조’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후난성 창사시 위화구 인민검찰원을 이끌고 있는 마셴싱 서기는 <혼인법> 41조에 “이혼 때는 원래 부부의 공동생활로 지게 된 채무는 응당 공동 상환한다”고 돼 있다는 데 주목합니다. 혼인법은 ‘공동생활’에 한정하는데, 이를 해석하는 ‘혼인법 해석’은 이런 한정어를 뺀 셈입니다. 비록 ‘법 해석’이 법 자체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 일관된 판결을 유도하는 구실을 하지만, 마 서기는 법 자체도 봐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2015년 양회에서 전국정협위원인 추이위 전국부녀연합 부주석은 ‘24조’의 개정 또는 수정을 건의했습니다. 중국 입법기구 인민대표대회나 자문기구 정치협상회의에서도 이 문제를 다루는 일이 늘고 있습니다.

지난해 5월 중국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선 ‘혼인은 위험이 있다. 신중해야 한다’는 글이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푸젠성 취안저우의 국유기업 직원인 왕진란이 쓴 글로 ‘24조’ 탓에 의도치 않게 결혼으로 인한 거액의 채무를 질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중 한 대목이 눈길을 끕니다. “혼인은 자유다. 사람은 자유에 대해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 기업에 투자하는 것과 같다. 믿을 수 없는 경영자를 데려오면, 악의적인 공모가 없었다고 증명하지 못하면, 채무 책임을 져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그렇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중국,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oscar@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단독] 린샤오쥔 ‘금’ 위해…중국 팀 동료 ‘밀어주기’ 반칙 정황 1.

[단독] 린샤오쥔 ‘금’ 위해…중국 팀 동료 ‘밀어주기’ 반칙 정황

한국, AG 첫날 금메달 7개 ‘콧노래’…2005·2006년생 ‘씽씽’ 2.

한국, AG 첫날 금메달 7개 ‘콧노래’…2005·2006년생 ‘씽씽’

500m 금 따고 통곡한 린샤오쥔…중국에 쇼트트랙 첫 금메달 3.

500m 금 따고 통곡한 린샤오쥔…중국에 쇼트트랙 첫 금메달

트럼프 “말도 안 되는 종이 빨대…플라스틱으로 돌아간다” 4.

트럼프 “말도 안 되는 종이 빨대…플라스틱으로 돌아간다”

타이 여성 100여명 조지아로 유인해 난자 적출…“수사 중” 5.

타이 여성 100여명 조지아로 유인해 난자 적출…“수사 중”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