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7일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비판하는 세계화와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연설을 한 뒤 미소지으며 연단을 내려오고 있다. 다보스/AP 연합뉴스
미국이 반세계화·보호무역·국가주의를 내걸자, 중국은 세계화·자유무역·국제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티피피) 탈퇴 행정명령을 내린 23일, 중국 외교부 쪽은 “중국이 미국을 대신해 국제사회의 지도적 역할을 맡을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반세계화와 보호주의를 밀어붙이자, 이전까지 서방세계로부터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대상으로 지목됐던 중국이 이젠 정반대로 세계화와 자유무역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셈이다.
장쥔 중국 외교부 국제경제국장은 이날 외신기자들과 만나 “중국이 지도적 지위에 올랐다고 말한다면, 이는 중국이 갑자기 앞으로 나온 게 아니라 기존 선두주자들이 갑자기 뒤쳐져 중국을 앞으로 밀어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24일 전했다. 중국 경제지 <차이신>도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티피피 탈퇴 추진 소식을 전하며 “미국은 티피피 탈퇴로 아시아·태평양지역 동맹국들과 소원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사실상 중국을 겨냥해 진행된 ‘경제 블록 작업’이 무산된 데 대한 ‘반가움’이 녹아있다.
미국이 태평양 연안 국가들을 포괄하는 세계 최대 자유무역지대를 만드려는 티피피에서 탈퇴하자, 그 공백을 중국이 채우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주도한 티피피에 대항해 추진해온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아르셉) 체결을 서둘러 왔다. 장 국장도 이 협상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2012년 11월 정식 협상이 시작된 이 협정에는 한국, 일본,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 등 16개국이 참가하고 있다. 당초 2015년 말까지 최종 협정을 마련하려다 티피피의 부상으로 일정이 늦춰졌다. 미국의 티피피 탈퇴로 아르셉은 아태 국가들에게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홍콩의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가 보도했다. 이 협정은 대상 인구 35억명에, 총 국내총생산(GDP) 22조6천억달러로 최대 경제권이다. 미국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는 지난해 11월 보고서에서 “미 의회가 티피피를 비준하지 않으면, 아르셉이 티피피의 공백을 메우고 무역 중심이 이전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미 의회 자문기구인 ‘미·중 경제안보조사위원회'는 티피피가 무산되고 아르셉이 추진되면, 중국이 880억달러(104조원)의 경제적 혜택을 얻을 것이라는 추산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아시아개발은행 분석가 가네샨 위그나라자는 “이 협정은 아마 올해 말 협상 강도가 높아져 합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관리들도 올해 안 타결을 벼르고 있다. 아르셉은 지난해 12월10일 인도네시아에서 16차 실무협상까지 진행됐고, 다음달 일본에서 다음 협상이 열린다.
그러나 일각에선 티피피가 지지부진하면 아르셉도 힘을 얻기 쉽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이 무리하게 블록화를 추진하진 않을 것이란 뜻이다. 베이징 외교소식통은 “중국은 미국처럼 높은 수준의 적극적 시장개방보다는 자체 성장 및 국내산업 보호 등을 우선시할 것”이라며 “중국은 세계 최대 수출국이자 세계화·자유무역의 최대 수혜자로서 현재의 무역환경이 유지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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