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진출한 독일 기업은 8000개가 넘는데, 독일에 진출한 중국 기업은 2000개가 안 된다. 그러나 중국 인구는 독일 인구의 16배다. 주중 독일대사는 중국에서 일한 지 오래됐으니 중국 투자환경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 2일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독일이 중국에 ‘무역 불균형’ 문제를 제기하는 데 대한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독일 정부는 지난달 21일 중국 푸젠그랜드칩투자펀드가 독일 아익스트론을 6억7000만유로(약 8470억원)에 인수하려는 계획의 승인을 철회하고 심사를 재개하겠다고 했다. 중국이 항의하고 독일은 중국의 시장 제약을 비판하는 등 양쪽의 갈등은 누그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독일의 예민한 반응은 중국의 ‘외국기업 사냥’에 대한 서방의 불안과 불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중국 상무부 자료를 보면, 올해 1~9월 중국 기업의 국외 인수·합병은 521건, 674억4000만달러 규모에 이르러, 지난해 전체 규모(579건, 544억4000만달러)를 넘어섰다.
중국의 인수·합병 붐을 전지구적 현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전세계적으로 이뤄진 인수·합병 규모(4.7조달러)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수준(4.1조달러)을 넘어섰다. 중국 경제전문지 <경제참고보>는 4일치 기사에서 역사적으로 1870년대(1기), 1916년(2기), 1960년대 말(3기), 1970년대 말(4기), 1990년대 말(5기)에 이어 지금이 6번째 인수·합병 붐이라는 전문가의 시각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1~3분기 전세계 인수·합병 규모(2.37달러)는 지난해보다 22% 감소하는 등 인수·합병이 부진한 상태인데도, 중국이 ‘나홀로 (인수·합병)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 기업의 국외 진출은 다양한 배경에서 최적의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우선, 저임금에 기댄 성장이 한계가 분명한 상황에서 기술 혁신을 위해선 장기간 노하우 축적보다 선진 기업 인수·합병이 ‘효율적’이란 판단이다. 둘째, 중국 정부가 최근 2년 동안 금리를 잇달아 내리고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형성된 상황에서, 향후 위안 평가절하 가능성을 감안해 ‘더 싼 가격에 사들이자’고 결정한다는 것이다. 셋째, 2025년까지 중국 제조업 수준을 독일, 일본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중국제조 2025’ 등 정부 정책이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외 투자를 장려하면서 각종 규제가 완화됐다.
중국 당국은 현재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본다. 장샹천 상무부 국제무역협상부대표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국외 인수·합병과 관련해, 중국의 대표 기업들이 자금·기술·인재확보·국제경영 등에서 충분한 실력을 보여줬고, 5억달러가 넘는 대규모 인수·합병 건이 늘었으며, 인수·합병 영역이 자원·에너지 분야에서 기술·제조업 분야로 다양해진데다, 국유기업뿐 아니라 민간기업의 국외 진출이 지난해 전체 금액의 75.6%를 차지할 정도로 늘었다는 등의 내용에 방점을 뒀다.
하지만 중국발 인수·합병에 대한 서방의 우려는 안보 문제와 불균형 등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파이낸셜 타임스>는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세계 최대 수출국의 꿈을 실현했지만, 다른 나라들의 중국시장 진출은 자동차 등 일부 영역에 국한됐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중국 기업 상당수가 국유기업 형태여서, 중국 기업들의 외국 기업 지분 인수가 시장경제질서를 훼손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중국에서도 과도한 국외 기업 인수·합병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안방보험이 미국의 스타우드 호텔 인수를 시도했다가 가격만 올린 채 지난 5월 물러섰던 사례처럼, 자금이 투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외국으로의 자본 유출은 순수한 투자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위안 추가 하락 전에 자산가치를 지키면서 중국 당국의 통제를 벗어나려는 흐름이 반영된 것일 수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최근 몇차례 불거졌던 인수 실패 및 지연 등은 중국 당국의 자본 유출 차단책일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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