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제조업체들이 주요 부품과 원자재의 국산화 비중을 크게 늘리면서, 외국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누려온 지위가 급속히 퇴조하고 있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중국은 금속류에서부터 마이크로칩에 이르기까지 주요 원자재와 중간재의 상당량을 외국에서 수입하면서 세계 경제성장과 교역의 견인차 구실을 해왔다. 글로벌 기업들에는 막대한 이윤을 보장해주는 화수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몇년새 중국 업체들의 외국산 원자재 및 부품 사용의 비중이 급감하면서 글로벌 업체들이 타격을 받고 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19일 보도했다. 중국의 중간재 생산업체들의 기술력과 품질 개선에 따른 ‘수입 대체 효과’로 풀이된다.
중국의 한 조리기구 제조업체는 몇년 전까지만 해도 프라이팬과 냄비의 코팅 처리를 위한 레진(수지)과 안료, 접착제 등 핵심재료 대부분을 미국 다우케미컬과 독일 에카르트 등 외국 업체에서 수입했다. 그러나 지금은 70% 이상을 국내 업체들에게서 공급받는다. 미국 주방용품 업체 ‘지엠엠(GMM) 논스틱 코팅스’ 중국법인의 품질 관리 책임자 주다 황은 “그 모든 원자재들을 지금은 중국의 누군가가 만든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중국이 완제품 생산을 위해 수입한 외국산 부품과 원자재의 규모는 전년 대비 15%나 줄어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최대 감소폭을 보였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달까지 14%가 줄어 지난해 기록을 갈아치울 전망이다.
이에 따라 중국 수출업체들의 수입 부품 사용 비율도 지난 10년간 연평균 1.6%씩 줄었으며, 지난해에는 19.6%까지 떨어졌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수입 원자재 및 부품의 비중이 급증세를 보이며 최고 40%가 넘었던 것에 견줘 반토막이 난 셈이다. 반면, 지난해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중국의 수입 감소와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중국은 원자재뿐 아니라 반도체와 기계 등 이윤 폭이 큰 중간재들의 국산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는 저가 상품들의 생산을 중국에 넘겨주는 대신 기술력을 앞세운 첨단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승부를 해온 글로벌 기업들로선 당혹스러운 추세다.
중국의 원자재와 중간재 수입 대체는 한국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미국 주방용품 업체 윌턴은 중국공장에서 생산하는 베이킹팬(식빵 굽는 팬)의 원자재에 일본산 또는 한국산 금속을 사용했었다. 그러나 윌턴의 글로벌경영 담당 부회장인 제임스 힐은 “지금은 중국산 금속제품의 품질이 좋아져서 코팅 재료를 포함한 거의 모든 부품을 중국산으로 쓴다”고 말했다.
중국의 공산품 국산화 추세는 앞으로 더 속도가 붙고, 범위도 첨단 소재와 부품으로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지난해 중국 정부는 핵심 부품과 원자재의 국산화 비율을 2020년까지 40%, 2025년에는 75%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위한 연구·개발 투자도 지난해에만 2130억달러(약 240조원)를 쏟아부었다. 중국 국내총생산의 2.1% 수준이다. 중국의 시장·금융정보업체 ‘윈드 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올해 들어 9월까지 중국에서 생명공학과 우주개발 등 첨단기술 분야의 수입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 줄었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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