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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독립항쟁-무력진압 ‘58년간 반복’

등록 2008-03-16 19:33수정 2008-03-16 23:30

중국 민족 분포
중국 민족 분포
중-티베트, 긴장의 역사
51년 ‘외교권 접수’가 서막
“평화를 신봉하는 나라가 전쟁준비를 끝낸 나라에 대항하기는 불가능하다. 유엔이 이 침략적 행위를 저지시켜줄 것을 기대한다.”

1950년 11월 티베트 외무부가 유엔에 띄운 긴급전문의 내용이다. 10월17일 중국 인민해방군 4만여명이 티베트 국경을 넘어서자 유엔에 도움을 호소한 것이다. 티베트 의회는 당시 겨우 16살이던 달라이 라마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기고 숨을 죽인 상태였다. 갑작스런 전쟁상황에 티베트는 이처럼 속수무책이었다.

중국은 야금야금 티베트를 접수했다. 1951년 5월 티베트 의회 대표들에게 ‘티베트 평화해방안 16개 조항’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이 조약에 따라 티베트의 외교권은 중국으로 넘어갔다. 9월엔 인민해방군이 라싸에 진주해, 중국의 직접적인 지배에 들어갔다.

1959년 라싸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티베트인들의 항쟁이 치솟았다. 중국이 달라이 라마를 체포하려는 낌새를 챈 티베트인들은 라싸로 모여들었다. 시위대는 1만5천여명으로 불어났다. 중국은 3월10일 이들을 향해 발포했다. 수많은 티베트인들의 시신이 거리에 뒹굴었다. 3월28일 저우언라이 당시 중국 총리는 티베트 정부의 해체를 발표했다.

티베트에는 계엄령이 떨어졌다. 중국은 티베트불교 사원을 파괴하고 학교를 폐쇄했다. 한때 6259개에 이르던 사원은 1976년엔 명맥을 유지할 정도로 줄어들었다. 문화대혁명의 회오리가 티베트에 불어닥치면서 티베트의 역사를 담은 책들도 불에 태워졌다. 계엄령은 마오쩌둥의 뒤를 이어 덩샤오핑이 실권을 잡으면서 해제됐다.

그러나 티베트인들의 독립을 향한 불길은 꺼지지 않았다. 1988년 중국은 모든 불평불만자들을 엄단하겠다고 공포했다. 1989년 3월7일 라싸에 다시 계엄령이 떨어졌다. 티베트와 중국의 갈등은 다시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이는 그해 말 천안문 광장에서의 민주화 시위와 이에 대한 유혈진압을 알리는 서곡이었다.

1990년 5월 계엄령이 다시 해제됐지만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강경한 태도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1992년 중국은 체제 전복을 도모했다는 혐의로 주요 티베트 지도자들의 집을 압수수색했다. 달라이 라마의 연설문과 녹음테이프, 책은 검열 대상에 포함됐다. 3년 뒤엔 달라이 라마의 사진을 보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공포됐다.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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