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하이난성 단저우에 건설되고 있는 아파트. 단저우/로이터 연합뉴스
중국 베이징 주민 장자광(45·가명)씨는 주택 4채를 갖고 있다. 각각 한국 돈으로 10억원이 넘지만 장씨는 부동산 보유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한국이라면 종합부동산세로 해마다 최소 수천만 원씩 냈어야 할 것’이라는 얘기에, 장씨는 “들어본 적 있다”며 “중국도 비슷한 세금이 논의되고 있는데, 언젠가 도입될 것이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고 어떻게 할지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재정부 관계자 “올해는 확대 조건 안 갖춰져”
하지만, 장이 세금 걱정을 할 일은 당분간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관영 통신이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시기상조론’을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신화통신>은 16일 중국 정부가 검토해온 부동산 보유세에 대해 “일부 도시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올해 안에 부동산세 개혁 시범 도시를 확대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국무원 재정부 당국자의 발언을 소개했다. 같은 날 중국의 금융정책을 결정하는 국무원 금융안정발전위원회는 긴급회의를 열고 유동성 위기를 겪는 부동산 부문의 리스크 방지와 해소를 위해 강력하고 효과적인 대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당국은 상하이와 충칭에서 부동산 보유세를 시범 도입한 지 11년 만인 올해 시범 지역을 확대하겠다고 수차례 공언했지만 결국 속도 조절에 나선 모양새다. 이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 상하이와 선전의 부동산 관련 주식의 90% 이상이 상승했고, 채권도 큰 폭으로 올랐다.
중국 정부가 올해 부동산 보유세 시범 지역을 확대할지 여부는 중국의 집 가진 중산층의 주요 관심사였을 뿐 아니라, 시진핑 국가주석이 적극 추진해온 ‘공동부유’(분배 중심 경제정책) 정책의 향방을 가늠케 하는 풍향계로 여겨졌다. 시 주석의 ‘공동부유’ 정책에 브레이크가 걸렸다는 분석이 쏟아진다.
중국은 부동산을 거래할 때만 세금을 낼 뿐 부동산 보유에 따른 세금이 없다. 사회주의 국가로서 개념상 토지를 소유하지 않기 때문인데,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국가와 국영기업이 보유한 주택의 소유권이 민간으로 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유세가 존재하지 않는다.
2000년 들어 대도시를 중심으로 집값이 급격히 오르고, 이에 따라 자산 격차가 급격히 벌어지면서 부동산세 도입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공산당 간부가 뒷돈을 받아 집을 수십 채씩 보유하는 사건이 보도되기도 했다. 중국 당국은 부동산세를 시범 도입하기로 하고 2011년 상하이와 충칭을 대상으로 시험에 들어갔다. 특정 지역에서 시범 사업을 한 뒤 전국 단위로 확대하는 중국 특유의 사업 방식이 적용된 것이다.
시범 사업은 제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인구 2450만명인 상하이는 주로 신축주택을 대상으로 부동산세를 걷고, 3200만명의 충칭은 고급주택이나 외국인이 새로 산 주택 등이 대상이다.
중국 광둥성 선전시의 모습. 선전/AP 연합뉴스
부동산세 도입의 급제동은 이미 이달 초 양회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의 총리 업무보고에서 예고됐다. 중국의 주요 현안과 관련한 정책들이 총망라해 보고되는 가운데, 부동산 보유세 관련 내용이 등장하지 않은 것이다.
중국은 앞서 2018년 3월 정부공작보고를 통해 부동산세 도입을 본격화했다. 시진핑 주석의 두 번째 5년 임기가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1년 뒤인 2019년 3월 양회에서 부동산세 법안 등 도입을 위한 입법연구가 결정됐고, 2020년 12월 국무원 재정부 부장(장관)은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적극적으로 부동산세 입법과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4월에는 중국 행정부인 국무원이 부동산세 입법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15일 시진핑 주석이 직접 나섰다. 시 주석은 공산당 이론지 <치우스>를 통해 “부동산세 입법과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한 발언(2021년 8월 제10차 중앙재경위원회 회의)을 공개했고, 8일 뒤인 10월23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는 부동산세 시범실시 확대계획을 발표했다. 선전, 하이난, 항저우 등 시범지역으로 수십 개 대도시가 거론됐고, 이들 도시는 긴장했다.
급물살을 타던 부동산세 도입은 올해 시범도시 확대를 앞두고 급제동이 걸렸다. 2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19 사태로 경기 하락이 지속되고 있고, 집값 하락 등 부동산 부문도 침체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최대 10%가량 하락했고, 통계를 낸 이래 처음으로 지난달 중장기 부동산 대출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부동산 산업은 2017년 기준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9%(한국은행)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부동산 보유세 도입이 눈앞의 경기 하락만으로 늦춰진 것은 아니다. 집을 여러 채 보유한 공산당 간부나 대도시의 중산층들이 제도 도입에 강하게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형식상 부동산을 완전히 소유하지 않고 50년 혹은 70년의 토지이용권만 가진 상황에서 보유세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반론을 펴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부동산은 중국 도시 중산층의 핵심 자산으로 자리잡았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지난해 4월 낸 자료를 보면, 중국 도시 가구의 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59.1%에 달한다. 부동산 비중이 71.8%(한국은행)에 달하는 한국보다 낮지만 부동산 비중이 절반 이하인 일본, 미국보다 훨씬 높다.
부동산세 도입은 다주택자나 고가주택 보유자 등이 타깃이지만 비교적 저렴한 주택을 한 채만 가진 서민들도 생소한 세금 도입에 반대하는 분위기다. 중국 지린성 단둥시에 사는 장리(35·가명)씨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우리는 집을 소유하지 않는다. 세금이 얼마든 보유세를 내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씨가 보유한 주택은 30만 위안(5700만원) 정도다.
부동산세 도입이 늦춰지면서 시진핑 주석이 지난해 내세운 ‘공동부유’ 추진에도 황색 신호가 들어왔다. 부동산세 도입은 심각한 수준의 자산 격차를 줄인다는 점에서 ‘공동부유’의 주요 정책 중 하나로 간주돼 왔다. 부동산세 도입 여부를 통해 시 주석의 정책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 주석은 지난해 2025년(14차 5개년 계획)까지 공동부유 기조를 탄탄히 하고 주민간 소득과 실제 소비 수준의 차이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올해 양회 전인대 업무보고에서도 ‘공동부유’라는 단어는 한 차례만 등장했고, 자세한 설명은 담기지 않았다. 그 자리를 메운 것은 감세, 금융 완화 등 경기부양 대책들이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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